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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 일상까지 생생히 중계… 팔레스타인 고통을 트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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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 일상까지 생생히 중계… 팔레스타인 고통을 트윗하다

입력
2014.08.2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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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지금]

이스라엘 주민 언덕에 올라

불꽃놀이 보듯 웃으며 공습 감상

SNS로 전 세계 퍼져 비난 여론

미디어 기술 발달로 뉴스 환경 변화

흔들리는 사진·짤막한 비디오 클립

개개인의 기록 늘며 현장성 확대

팔레스타인 분쟁 같은 복잡한 사안

일목요연하게 풀어 주고 계속 갱신

북스 등 온라인 뉴스 매체 도약

언덕 위에 모여 앉은 이스라엘 스데롯 마을 주민들이 밤 하늘 섬광을 내며 가자지구에 쏟아지는 폭격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이 사진은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가 실시간으로 트위터에 올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트위터 캡처
언덕 위에 모여 앉은 이스라엘 스데롯 마을 주민들이 밤 하늘 섬광을 내며 가자지구에 쏟아지는 폭격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이 사진은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가 실시간으로 트위터에 올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트위터 캡처

이스라엘의 이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 와중에서 세계인들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각인된 이미지는 무엇일까.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주검은 확실히 참혹하지만, 그 속에 시리아에서 죽은 아이들 사진이 출처불명으로 섞여 널리 공유돼도 모르고 넘어갈 정도로 보편적인 참극이 돼버렸다.

이번 공격의 독특한 성질을 절묘하게 포착해 두고두고 서늘한 충격을 주는 이미지는 따로 있다. 바로 ‘스데롯 시네마’라는 별칭이 붙은 사진이다.

사진 속에서 밝은 표정의 이스라엘 스데롯 마을 주민들은 삼삼오오 언덕에 의자를 놓고 앉아 먼발치에서 반짝이는 풍경을 구경하고 있다. 여름 밤의 불꽃놀이가 아니다. 반짝이는 불빛은 가자지구에 퍼부어지는 이스라엘군 폭격의 섬광이다. 팔레스타인계 무장단체 하마스의 포탄 위협에 불안해하던 주민들은 그 광경에서 나름의 통쾌함을 느낀 것이다. 동시에 이 장면은 지배국의 국민들이 사실상 무차별적인 폭격의 민간인 학살 현장에 환호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충격 안겨준 ‘스데롯 시네마’

‘스데롯 시네마’에서 뿔난 악마들이 아닌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인간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발견하는 착잡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 장면을 더욱 일상적으로 만든 장치가 있다. 바로 그 사진이 사람들과 만난 방식이다. 이 사진은 덴마크 신문기자 알란 소렌센이 현장에서 찍어 트위터에 실시간으로 올렸고, 장문의 기사와 함께 신문기사로 실리기 한참 전에 이미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세계가 공유했다. 1990년대에 CNN의 걸프전 보도로 전쟁의 실황을 TV를 통해 구경할 수 있게 되었던 것처럼, 지금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쟁 속의 일상마저 TV 보다 훨씬 일상적인 통로로 접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스라엘의 침공은 하마스의 공격에 맞선 정당방위라는 명분 측면으로 보나 민간 피해를 대놓고 무시하는 폭격 방식과 당연한 결과인 민간인 살상으로 보나 2008년의 침공과 상당히 유사하다. 가장 다른 점을 꼽으라면 소셜미디어 등 매체의 진화로 그때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폭넓게 팔레스타인의 암울한 현실이 드러나고 뉴스를 읽는 사람들에게 널리 관심을 끌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국제무대에서 친이스라엘 행보 때문에 늘 야유를 받는 미국의 각종 언론에서조차 피해자의 목소리가 그때보다 커졌다. 다른 정치사회적 변인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한 몫을 했다.

물론 2008년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각자의 주장을 각자의 미디어로 전파했다. 그때도 미국 대형 언론사들은 기자를 현장에 보냈고 인터넷도 활용했다. 당시 팔레스타인 총선과 뒤이은 내분으로 온건파 파타당은 요르단강 서안지역을, 그리고 무장정파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었다.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차지하고 가장 먼저 신경 쓴 것 중 하나는 관영방송국 알아크사(Al-Aqsa)TV를 세우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언론 기능보다는 하마스의 정치 주장을 선명하게 전달하는 홍보 창구로 삼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쪽에서는 ‘팔레스타인 미디어워치’ 같이 팔레스타인 매체의 주장을 감시하고 반박하는 것을 전문으로 표방하는 단체가 이미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성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직 무언가를 기록하고 전파하기 위해서는 기자라는 존재가 필요했고, 개개인이 직접 무언가를 쓰려고 해도 폭격 당하지 않은 인터넷카페를 찾아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현장의 소식은 증언의 형식으로 중개인들의 필터링을 거치며 전달될 따름이었다. 즉 현장 바깥의 세상에는 각자의 뉴스룸 지침에 따라서 걸러내고 가공된 이야기들만 전달됐고, 그것은 대체로 일방적인 홍보이거나 아니면 사건 발생과 사망자 숫자만 던지는 기계적 기사들이었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숨지고만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기적'으로 불렸던 이 팔레스타인 아기는 인큐베이터에서 5일만에 숨졌다. 그 소식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전세계에 순식간에 번졌다. 페이스북 다운로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숨지고만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기적'으로 불렸던 이 팔레스타인 아기는 인큐베이터에서 5일만에 숨졌다. 그 소식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전세계에 순식간에 번졌다. 페이스북 다운로드

필터링 없는 현장 접근 쉬워져

지난 수년간 급격하게 사용률이 높아진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그런 뉴스 환경을 상당히 바꾸어놓았다. 현장에서 일상을 보내는 이들이, 어떤 필터링도 거치지 않고 현장 모습 그대로를 직접 손쉽게 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이 보내는 내용은 치밀한 의제 설정 전략을 거치는 언론 조직의 기사와는 달리 순간의 느낌에 충실했다. 스마트폰은 높은 휴대성과 처리능력을 통해 사실상 어디서나 사진, 비디오, 텍스트를 아우르는 생생한 현장 기록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소셜미디어는 이전부터 존재했던 블로그 같은 개인미디어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게 기록들을 전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스라엘 청소년 3명이 납치ㆍ살해 당한 사건으로 양측의 위기가 고조되던 초기 단계에 이스라엘 경찰이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청소년을 백주대낮에 처절하게 구타한 일이 있었다. 그 장면을 이웃집 주민이 스마트폰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스라엘 경찰이 팔레스타인 시민을 임의로 폭행한다는 증언은 예전에도 많았으나, 이제는 그런 현장을 생생하게 거의 시차 없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영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재빨리 수백만 명에게 퍼졌고, 주류 언론사들까지 방영하게 되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는 현장의 일상적 경험을 바깥에서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시선으로 생생하게 전달하게 만든다. 그간 워낙 기기와 서비스가 널리 보급되어, 아무나 어디에서나 그런 식으로 자기 주변의 일상을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개개인의 현장 기록이 정제된 설명 없이 그 자체만으로 설득력을 얻는 경우란, 실은 복잡한 정치 분쟁보다는 노골적 재난 사건일 때다. 팔레스타인의 상황은 상당히 복잡하게 얽힌 정치 분쟁이긴 하지만 현장에서 일어나는 비극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 공권력의 폭력에 시달리고 폭격에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재난 상황이기도 하다. 급하게 찍어 흔들린 사진들과 짤막한 비디오 클립들이 호소력을 발휘하며 전파된 것도 그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제공한 현장성은 평범한 주민들만이 아니라 기자들에게도 유용하다. ‘스데롯 시네마’는 스마트폰으로 찍어 트위터로 올린 사진이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취재한 다른 여러 언론사의 기자들 역시 앞다투어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편집팀의 선별을 거치지 않은 현장 목격담을 수시로 올렸다. 예를 들어 영국 가디언 기자 피터 뷰몽트는 “오늘 아침 정말 충격적인 장면을 봤다. 한 남자가 두살배기 아들의 유해를 쓰레기 봉지에 담아 넣었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신문기사로는 난감할 이야기이지만, 이 글은 폭발적 호응 속을 얻어 순식간에 수천 명이 리트윗(재공유) 했다. 기자들은 주민들이 찍어 올리는 애통한 핏빛 사진들을 더욱 많은 독자들에게 공유해주는 일도 자연스럽게 수행했다. 지난 수년간, 소셜미디어 활용을 통한 기자 개인의 브랜드화라든지 뉴스 커뮤니티 관리라든지 하는 개념들이 세계 언론계에 상당 부분 정착한 결과이기도 하다.

주류 언론의 영향력 갈수록 저하

미디어 기술의 발달로 이런 현장성이 확대된 것과 함께 또 다른 큰 변화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온라인 뉴스 매체의 도약이다. 미국의 경우 CNN이나 FOX뉴스 같은 유력 뉴스 전문 케이블채널들은 이스라엘 편드는 보도를 일삼는다는 비판을 적지 않게 받아왔다. 지상파 방송 역시 기계적 양비론에 빠져서 폭력의 불균형이나 복잡한 갈등관계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뉴스를 접하는 매체 가운데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젊은 층으로 갈수록이같은 경향이 두드러진다.

대신 뉴스를 접하는 통로로 점차 강력해지고 있는 것은 ‘설명 저널리즘’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가며 자리잡아가는 온라인 뉴스 분야의 양질의 사이트들이다. ‘복스’(Vox.com) 같은 사이트가 여러 세부 논점을 조목조목 카드 형식으로 풀어주고 계속 내용을 갱신하는 것이 좋은 사례다. 이런 매체들은 팔레스타인 분쟁 같은 복잡하게 얽힌 사안을 일목요연하게 풀어주는 데 상당히 능숙해졌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힘입어 팔레스타인 분쟁은 예전보다 분명히 더 널리 자세히 알려지고 있다. 더 많은 이들이 팔레스타인 피해자들의 험난한 일상을 함께 목격하며 해결을 촉구하게도 되었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것은, 그런 여론이 그 자체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론이 동력이 되어 각국이 이스라엘을 외교적인 규제나 산업 보이콧 등으로 압박하고, 이스라엘 내부 인권세력의 성장을 지원할 수 있어야 비로소 해결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작업에 더욱 폭넓은 참여를 유도해내는 것은 새로운 미디어 기술의 몫이 될 수도 있다.

김낙호 미디어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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