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美문화원 방화 사건 소재로
접촉 사고 낸 평범한 택시기사를 경찰ㆍ안기부 등 국가 권력이
국보법 위반자로 바꿔 버리는 이야기
결정적인 순간에 서사가 멈추는 건
용산 참사부터 세월호 참사까지, 진실을 폐기하는 시대에 던지는 질문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아무것도 읽을 수도 없는 세계. 눈 앞에 있는 것도 외면하고 다른 것을 말해 버리는 세계, 그것을 조장하는 세계. 그것이 어쩌면 ‘차남들의 세계’라고 말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어 버리는 행위는 그것이 일으킬 결과만 놓고 보면 매우 비이성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겠으나 그 과정을 생각하면 사실 대단한 상상력을 요하는 일이다. 전두환 정권이 자행한 ‘멀쩡한 사람 간첩 만들기’만 해도 그렇다. 등산이란 단어를 접선으로 바꾸고 교사라는 말에서 전교조를 연상하며 신앙 생활을 빨갱이 짓으로 연결시키는 행위는, ‘기존상식의 전복’이란 점에서 어쩐지 아방가르드 예술을 떠올리게도 하는 것이다.
소설가 이기호가 장편 ‘차남들의 세계사’를 냈다. 1980년대 반미투쟁의 효시가 됐던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일명 ‘부미방’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참으로 ‘아방가르드’했던 그 시절, 진실이 버려지고 발에 채여 폐기 당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택시기사 나복만의 진실은 그가 어느 날 새벽 5시 무렵 강원도 원주사거리에서 자전거 탄 신문배달원을 살짝 치였다는 것, 자빠졌던 배달원이 다시 일어나 자전거를 끌고 사라졌다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부미방 사건의 용의자들이 원주로 숨어든 이상 진실은 진실로 남을 수 없게 된다. 도로교통법 위반자를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형질변형시키기 위한 대규모의 상상력이 국가적 차원에서 발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가 상상력의 먹이로 던져주는 건 두려움이다. 원주경찰서 형사는 경정에게, 경정은 안기부 요원에게, 안기부 요원은 청와대에게, 청와대는 백악관에게 ‘조인트’를 까일까 봐 각자의 상상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린다. 그 두려움의 크기란 택시기사 나복만을, 월북한 아버지로부터 의식화 교육을 받고 고아원 동료들과 ‘형제회’를 결성해 부미방 사건에 뒤지지 않은 엄청난 테러를 일으킬 ‘뻔’ 했던 사람으로 만드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쓰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만약 북한 주민이 ‘데미안’을 읽는다면(소설에는 데미안을 줄줄 외우는 안기부 요원이 등장한다) 작품이 지닌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정치가 우리 감수성의 폭을 얼마나 제한하는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데 공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관심이 생겼습니다.”
작가는 소설을 용산참사가 일어난 2009년 쓰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시절의 사건으로 추억돼야 할 일이 오늘날 고스란히 재현되는 것을 보고 그 뿌리를 재삼 거론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제대로 애도되지 못한 이들에 대한 애도의 목적도 있었다. “처음부터 정권 비판을 목표로 시작하지는 않았어요. 범죄자로 ‘조작’됐지만 단 한번의 해명 기회도 얻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나복만 같은 사람들을 애도하는 게 소설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쓰이면서 소설은 중간에 살짝 톤을 달리한다. 흘러 넘치는 재치와 박진감 있는 구성으로 독자들을 끌고 가다가 작가는 결정적인 순간에 서사를 놓아 버린다. “그래서…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그 다음 일어난 일이 궁금한가? 하지만, 들어보아라. 정작 말하기 어렵고, 쓰기 힘든 것은 고통 그 자체이다. 스토리를 멈추게 하고, 플롯을 정지시키는, 그런 고통이 사라진 이야기란…사파리 버스에서 내다보는 저녁놀 붉게 물든 초원과 아무런 차이가 없지 않은가!”
저 고통은 세월호 참사와 연관이 있다. 작가는 당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신문에 쓰던 칼럼도 중단했어요. 열심히 갈고 닦은 문장으로 정권에 문제 제기를 해왔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었던 건지. 벽에다 계란을 던져놓고 ‘잘 던졌다’ 자화자찬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소설을 쓰면서도 상당 시간 멈칫거렸어요.”
서사에 취해 앞으로 달려나가는 스스로의 모습에서 작가는 나복만의 역사를 재창조하기 위해 진실을 내다버린 안기부 요원들의 모습을 떠올린 듯 하다. “이 이야기가 재미있습니까? 바깥에 있는 진실은 어떡하고요?”라고 묻는 듯한 그 중단의 대목은, 기법이라 표현하기엔 너무나 생생한 ‘날 것’의 울림을 남긴다.
“소설이 이 시대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순 없겠지만 작은 질문이라도 던져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이 평범한 시대라면 흥미로 문학을 대하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겠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문학을 재미로 쓴다는 건 정권에 대한 동조 밖에 안 되지 않겠습니까.”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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