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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나쁜 애들이 수업 분위기 흐린다" 일부러 재우기도

입력
2014.08.2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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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적성 없는 아이들에 "그것도 못 하냐" 다그치기만,

성적이 학생 평가의 전부... 다른 능력·소질 발견에 무관심

초등학교 2학년 선미(가명)는 학급 26명 중 꼴찌다. 아직 한글을 몰라 시험 문제를 읽지 못한다. 공부를 못한다고 친구들도 선미를 따돌린다. 교사가 무엇을 물어보면 1초도 지나지 않아 “몰라요”라고 대답한다. 알아보려는 노력도 없다. 무기력감에 빠져 생각하기조차 귀찮은 것이다. 선미는 수업시간 내내 멍하니 있거나 책상에 엎드려 잔다. 직업 없이 술에 빠져 지내는 아버지와 밤에 일하는 어머니는 선미의 공부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부모의 뒷받침 없이 선미가 기댈 데라고는 학교밖에 없지만, 교사들은 ‘가르쳐도 안 된다’며 방치했다. “글도 못 읽는다”고 놀려대는 친구들로부터 상처도 심했다. 꼴찌를 맡아놓은 선미는 항상 주눅들어 있다. 늘 우울한 표정으로 교실 구석에서 혼자 앉아 있다 집으로 돌아간다.

중학교 2학년인 준호(가명)는 이미 공부를 포기했다. 교실에서는 맨 뒷자리만 고집하고 숙제를 안 해와서 체벌을 하려고 하면 머리를 들이밀고 “빨리 때리세요”라고 한다. 처음엔 수학을 포기하고, 영어를 포기하더니 준호는 지난 학기부터 학교를 아예 안 가겠다고 버텼다. 2주 넘게 무단결석을 하고 방에만 틀어박혀 하루 종일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잤다. 준호가 엇나가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반에서 중간 정도 성적이었던 준호는 명문대에 가야 한다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할 자신이 없었다. 스스로 ‘공부에는 적성이 없다’고 여겼지만 부모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공부 외의 선택을 인정하지도 키워주려 하지도 않았다. 학교에서도 별 도움을 받지 못했다. 교사는 “그것도 못하냐” “공부 좀 열심히 해라”고 다그칠 뿐이었다. 결국 준호는 아예 공부에서 손을 뗐다. 더 이상 공부 때문에 상처받지 않겠다는 준호의 저항이었다.

성적만이 학생 평가의 전부인 학교에서 아이들이 깊이 병들고 있다. 학교는 상식적 시민을 양성하는 곳이 아닌 공부 잘하는 소수를 위해 봉사하는 제도로 고착됐고, 공부 아닌 다른 능력과 소질을 키우는 것에는 관심도 열정도 없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공교육 체제에서 일찌감치 인생의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혀 열패감에 시달린다. 기초학력에 미달하는 소수 학습부진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일부 우등생을 제외한 대다수 학생이 초중등 교육 단계에서부터 실패자라는 좌절을 경험한다. 예전 같으면 명문대에 못 가거나 대입에 낙방했을 때에나 느끼던 인생의 좌절을 특수목적고에나 국제중학교에 가지 못했을 때 쉽게 경험한다. 사립초나 영어유치원 등을 가느냐 못 가느냐에 따라 이후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깊이 뿌리박혀 더 이른 나이에 좌절을 부추긴다.

우리의 공교육은 공부 잘하는 소수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하고 소질을 계발하도록 격려해야 마땅하지만 학교는 이에 대해 관심도 열정도 없다. 오히려 모멸적 대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교칙이 엄격한 사립중학교를 다녔던 고교 3학년 윤아(가명)는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날라리’로 찍혔다. 시도 때도 없이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윤아에게 공부도 못하면서 수업분위기를 흐린다는 지적이 돌아왔다. 한번은 시험기간에 마음잡고 공부를 해보려고 교사에게 모르는 문제를 물어봤다가 ‘수업시간에 다 설명했는데 또 갖고 오느냐’고 면박을 받았다. 이런 경험 후 윤아는 “내가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싶고, 이제 와서 해 봤자 될 것 같지도 않아서” 2학년 2학기 때부터 완전히 공부에서 손을 뗐다. 시험을 볼 때 문제도 읽지 않고 답을 찍고 잤다. 윤아는 “학교는 공부를 못하면 같은 학생 취급도 안 한다”며 “하루 종일 엎드려 자도 선생님들은 아무 신경도 안 쓰고 재우거나 복도에 교장선생님이 지나갈 때만 깨우는 시늉을 했다”고 말했다.

한글을 못 읽고 놀림감이 된 초등학생 선미, 명문대 압박에 공부에 흥미를 잃은 중학생 준호, 교사들의 날라리 취급에 스스로 포기한 윤아처럼 학교에서 인정받을 기회를 갖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한 학생들은 어린 나이부터 좌절과 자기비하, 무기력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현수 관동대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를 ‘공부상처’라고 규정했다.

공부상처는 단순히 학습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부모에 대한 원망, 학교 부적응, 학업 중단, 비행으로 이어진다.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은 “학생 때는 공부를 잘하는 것이 자존감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공부를 못하면 부정적인 자아가 형성되기 쉽다”며 “수업시간에 딴짓하고 자다가 결국 학교 부적응으로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명수(가명)가 그런 경우다. 중2 때 명수는 갑자기 어려워진 학교수업에 대해 “왜 해야 되는지 몰라서” 공부를 포기했다. 한번 공부에 흥미를 잃자 학교에 가기 싫어졌고, 대신 발길은 PC방으로 향했다. 담임교사로부터 “왜 학교에 나오지 않느냐”는 전화가 몇 번 걸려왔지만 그러다 말았다. 학교는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을 추슬러 진학 실적을 올리는 게 더 중요했다. 그러는 사이 명수는 PC방에서 학교 안 가는 동네 형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명수는 지금 그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걸핏하면 싸움에 휘말려 경찰서를 제집 드나들듯 하고 있다. 학교에 흥미를 잃고 문제아로 찍힌 명수가 이를 회복할 기회를 전혀 찾지 못한 것이다.

김현수 교수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적절한 기회가 주어지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많은 아이들이 완주를 포기한다”며 “공부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인생 포기로 이어져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들을 방치하는 우리 사회의 공교육은 미래의 시민사회 구성원들을 포기하고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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