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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얼기설기] 교과서의 거짓말

입력
2014.08.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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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 수는 2가 아니다

모든 이론, 수백년 뒤 바뀔 수도

호기심이 과학기술 진보의 원천

1 다음의 수는 무엇일까? 2라는 대답이 곧바로 나왔다면 대개 다음의 두 부류에 속한다. 머리 아픈 수학 시험과는 멀어진 어른의 삶을 살고 있거나, 유치원에 다니거나 갓 초등학교를 입학한 어린이일 가능성이 크다. 어릴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는 1 다음의 수는 2라고 나온다. 하지만 불과 일 이년 뒤 1 다음의 수는 2가 아니며, 1과 2 사이에는 1.5와 같은 수가 있다는 걸 교과서를 통해 배운다. 좀더 시간이 지나면 1.5뿐 아니라 와 같은 무리수도 배우게 돼 1과 2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수가 있으며 1 다음의 수가 무엇인지 정확히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학생들에게는 제곱해서 음이 되는 수가 없다. 하지만 고등학교로 진학하면 제곱해서 음이 되는 허수가 등장한다. 허수의 존재를 알고 있는 고등학생이 중학교 수학 시험을 봤다면 오답을 적었을 것이다. 혹은 요즘과 같이 선행학습이 만연한 경우 이미 허수를 알고 있는 중학생들은 시험을 보면서 엄청난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이외에도 수학 교과서가 하고 있는 거짓말은 없을까? 우리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라고 배웠다. 하지만 휘어진 평면에 그려진 삼각형은 180도보다 작거나 큰 내각의 합을 갖는다. 태평양을 횡단해서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는 이상하게도 지도 상의 직선 거리를 날아가지 않는다. 서울을 출발한 비행기는 북극을 향해 날아가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며 태평양을 횡단한다. 멀리 돌아간다고 해서 요금을 더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항공사가 이런 경로를 택할까? 그건 바로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다. 둥근 지구 위를 달리거나 날아가는 경우 두 도시를 잇는 최단경로는 지도 위에 자를 대고 그은 직선이 아니다. 한국과 미국, 호주의 수도를 연결하는 비행기 경로로 삼각형을 만든다면, 이 삼각형은 세 개의 곡선으로 이루어지게 되고 내각의 합은 180도가 아니게 된다.

이쯤 되면 그 동안 믿었던 교과서에 뒤통수 맞은 것이 한두 개가 아닐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교과서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각자의 해석이 다를 수 있는 역사나 사회 등과 같은 교과서는 여러 논란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수학과 같은 교과목은 거짓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이와 같은 일은 왜 생기는 걸까?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작스레 축적된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하나씩 쌓여온 지식들이 합쳐져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래서 교과서는 오래 전의 과거로 돌아가서 아주 적은 양의 지식에서 시작해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조금씩 더 많은 최신 지식을 보여준다. 비단 수학 뿐 아니라 과학에서도 이런 예는 쉽게 찾을 수 있다. 200여 년 전에는 뉴턴의 법칙이 자연현상을 모두 설명하는 법칙인 줄 알았다. 하지만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빛에 가까운 속도로 운동할 때 적용되는 상대성 이론을 발표해 뉴턴의 법칙도 틀릴 때가 있음을 밝혀냈다.

지금도 연구개발 현장에서는 수많은 과학기술인들이 그 동안 옳다고 믿어왔던 법칙의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하며, 새로운 이론을 발표해 과거를 대체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법칙과 이론은 수백년 뒤 모조리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흔히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으로 ‘호기심’을 꼽는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왜’라는 의문에서 시작되는 지적 호기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과학과 첨단기술, 그리고 이에 기반한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호기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교과서의 내용을 절대 진리라고 믿고 있다면,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의심하고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지식의 진보와 사회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물론 시험 문제에 답할 때에는 그 당시 배우고 있는 교과서의 내용에 맞춰 답을 써야만 점수를 받는 현실과의 적절한 타협은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호기심과 의심, 의문, 그리고 적절한 타협은 비단 수학이나 과학 뿐 아니라 삶의 전반에 필요한 덕목일지 모른다.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ㆍ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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