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극의 대부 격인 임영웅 연출이 데뷔 60주년을 기념해 연극 ‘가을 소나타’를 무대에 올렸다. 극 중 샬롯 역을 맡은 배우 손숙의 데뷔 50주년 작품이기도 하다.
연극 ‘가을 소나타’는 인간내면의 심리변화를 한정된 공간에 대입해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다음달 6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공연되는 ‘가을 소나타’는 영화, 연극 등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해온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르히만의 동명영화(1978년)를 각색한 작품이다. 사회적 성공에 집착하는 피아니스트 샬롯과 그런 어머니 밑에서 애정 결핍을 겪으며 자란 딸 에바(서은경)가 7년 만에 재회하면서 겪는 갈등을 그린다.
단풍이 지기 시작한 가을 초입, 에바는 얼마 전 연인과 사별한 어머니 살롯을 집으로 초대한다. 샬롯은 딸과 7년 만에 재회하고 사위 빅토르(한명구)와 처음 대면한다는 설렘을 숨기지 못하지만 곧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장애를 겪고 있는 둘째 딸 엘레나(이연정)가 요양원이 아닌 에바의 집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뜩잖은 감정을 드러낸다.
에바 역시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을 얻기 위해 자식을 돌보지 않았던 어머니의 무책임에 오랜 시간 애증과 원한을 품고 살아왔다. 마침내 그날 밤 모녀는 묵혀놨던 갈등을 폭발시키며 서로 깊은 상처를 낸다. 결국 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샬롯이 도망치듯 딸의 집을 떠나며 극은 마무리된다.
이 연극의 가장 큰 특징은 제한된 무대를 영리하게 활용한다는 점이다. 공간 배경이 되는 에바의 집을 두 개의 층으로 나눈 뒤 극 중반까지 1층과 2층의 공기를 전혀 다르게 설정하는 식이다. 엘레나가 같은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모녀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감정과 위태한 기운은 2층에서만 표현되고 어머니를 기다리는 에바의 설렘, 사위와의 첫 대면으로 샬롯이 느끼는 반가움, 가족의 화기애애한 저녁식사 등 행복한 감정은 모두 1층에서 나타난다. 관객은 같은 집임에도 공기가 다른 1층과 2층의 대조를 통해 두 주인공 각각의 내면에 사랑과 증오의 감정이 대립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게 된다.
그러나 연극은 중반 이후 약 한 시간 동안 샬롯과 에바가 말다툼을 하는 장소로 1층 거실을 택해 두 사람의 내면에 반가움과 설렘의 감정이 사라졌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두 주인공간 갈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엘레나가 계단을 기어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것을 계기로 둘의 말다툼이 일단락되는 등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간을 활용해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한다.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안녕, 마이 버터플라이’ 등에 함께 출연했던 손숙과 서은경의 호흡은 극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준다. 영화와 달리 클로즈업이 없는 무대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조명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특정 장면과 심리를 강조했다. 그러나 번역투의 말이나 “~했어”라는 종결어미가 반복돼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아버지의 불륜, 어머니의 불륜, 어머니 불륜상대와 딸의 사랑, 10대 딸의 낙태 등 평생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 한 집안에서 일어났다는 점은 한국의 정서에서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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