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날씨는 내내 괴괴했다. 더위는 가다 말다 했고, 비는 오다 말다 했으며, 공기는 습하지 그지없어 손가락으로 허공을 쿡 찌르면 아무데서나 물방울이 떨어질 것 같았다. 휴지통에는 날벌레가 꼬였다. 이틀 넘게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빨래를 걷어 들인 후 내가 광화문 광장을 향해 집을 나선 것은 묵지근한 공기 속에서 가는 비가 다시 애매하게 부슬거릴 즈음이었다. 우산을 두어 번 접었다 폈다 하는 사이, 문득 ‘영(零)’이라는 한자가 생각났다. 바로 이런 비일까. 0이라는 뜻으로만 새겨두었던 이 글자가 ‘조용히 오는 비’를 가리키기도 한다는 것을 안 건 몇 달 전 L을 통해서였다. 소리 없이 비가 내려 땅에 스미면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라 했던가. 비에서 0이 나왔다? 나는 그 의미의 낙차가 놀라웠다. 13획의 제법 복잡한 한자로 ‘없음’을 나타낸다는 아이러니가 새삼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민 아빠가 머물던 광화문 단식천막을 두고서는 그저 착잡할 따름이었다. 여름도 가을도 아닌 무소속의 날씨. 무소속의 비. ‘零’이 피부에 닿았다. 비는 소리 없이 내려 땅에 스밀 것이다. 흔적은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0은 그저 ‘없음’이 아니다. 모든 수의 시작이기도 하다. 세월호 사건으로 떠난 아이들이 그런 0이 될 수 있도록 딸을 잃은 아비는 40일 넘게 곡기를 끊고 있다. 다만 나는 두렵다. 이 사람이 또 하나의 0이 되면 어쩌나 너무너무 두렵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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