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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여전히 맞갖지 않은 우리

입력
2014.08.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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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깊었던 교황 방한 4박 5일

겸손·온유로 사랑과 용서 일깨워

가고 난 뒤 더 강고해진 진영논리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8월 16일 광화문 124위 시복미사의 독회에서 낭독된 구약 ‘지혜서’ 중 일부다.

여기에 나오는 ‘맞갖다’는 입맛에 꼭 맞다, 알맞다, 적당하다는 뜻이다. 하느님 보시기에 좋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맞갖다는 순순한 우리말이지만 한자어로는 칭정(稱停)이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 저울대가 평평하게 멎은 상태, 공정하고 바르고 치우치지 않아 균형을 이룬 모습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4박 5일 방한 활동을 지켜보면서 이 맞갖다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교황은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을 통해 자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 용서와 이해의 삶을 살도록 다짐하게 했다. 한국인들은 이 며칠간 행복했다. 의붓어미에게 구박당하다가 마침내 생모를 만나 편하고 안온한 품에 안긴 것 같은 기분이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울고 싶은 한국인들을 교황은 두루 어루만지고 다독거리고 갔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다 교황을 환영한 것은 아니다. 방한 전에 이미 교황 방한 반대집회를 했던 일부 개신교 단체는 교황 행사장 옆에서 계속 교황과 가톨릭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고, 가톨릭은 기독교가 아닌 이단이며 교황은 적그리스도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특정 종교의 행사를 위해 광화문광장을 내주고 길을 막는 게 옳은 일이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교황이 떠난 뒤에는 진영논리에 입각한 수지타산과 공방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교황의 방한이 아시아 교세 확장을 위한 바티칸의 마케팅 전략 중 일부라는 점을 지적하며 폄하하는 사람들은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은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계산된 행동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극우 보수단체는 이번 방한에 대해 야당과 정의구현사제단이 대통령을 ‘얼굴마담’ 삼아 기획했으며 세월호 유가족과 제주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자들을 위해 초청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한국을 중세로 돌려놓을 정도로 찬미 일색이었으며 정부와 언론은 정치와 종교 분리의 원칙을 허물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미화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갈구하는 리더십과 겸손한 지도자의 모습을 부각시키려다 보니 의도적이든 아니든 과장도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가톨릭의 세계적 위상이나 천주교 시복식의 종교적 의미 등을 따져볼 때 이번 행사를 특정 종교의 제한된 집회로 축소할 수는 없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교황을 교종(敎宗)이라고 바꿔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일본 천황을 일황으로, 다시 일황을 일왕으로 낮춰 부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의도적 폄하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교황이 비무장지대(DMZ)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나눔의 집’을 찾아주길 원했던 것 같다. 그러나 교황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미사에 초청하는 수준에 그치는 등 정치적 외교적 문제에 휘말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 점은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교황이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열쇠가 아닌데도 한국인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이해와 진영논리에 맞춰 교황을 유도하려 했고, 발언을 아전인수로 해석하고 인용하며 이용했다. 교황이 떠난 다음 날 어떤 신문의 1면 제목은 ‘큰 가르침, 잊지 않을게요’였다. 이런 제목에 대해서도 다른 종교의 신도들이 거부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따져봐야 할 것은 그런 것보다 신문편집으로서의 적절성, 제목 자체의 완결성 이런 게 아닐까.

교황이 떠난 뒤 그야말로 맞갖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교황 방한의 진정한 의미는 교황에게서 찾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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