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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산길, 그리고 살 길

입력
2014.08.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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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산을 오르는 열한 가지 방법’이 새삼 떠오른다. 1)내가 오르고 싶은 산을 오른다, 2)산에 이르는 길을 찾는다, 3)먼저 간 사람에게 배운다, 4)위험은 언제 닥칠지 모르지만, 예방 가능하다, 5)변화하는 풍경을 마음껏 누린다, 6)자신의 몸을 소중히 돌본다, 7)자신의 영혼을 믿는다, 8)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마음을 갖는다, 9)정상에 오르면 마음껏 기쁨을 맛본다, 10)한 가지 약속을 하자, 11) 우리의 경험을 타인과 나누자. 그냥 신발끈 질끈 매고 오르면 되지 싶은데, 작가는 이렇게 많은 ‘방법’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것이 비단 단순히 높이 솟은 봉우리 산들만 이르는 것일까? 그것은 삶에 대비해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방법들이 순서에 따라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멋져 보이는 산도, 만만해 보이는 산도, 누군가 온갖 상찬으로 유혹해도 내가 오를 산은 내가 정해야 한다. 당연히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내 몫이고, 그 확신도 나의 결정이다. 하지만 뜻밖에 이 첫 단추부터 엉키거나, 나중에 저절로 되겠지 여기는 경우가 흔한 듯하다. 물론 아무 고민도 없고,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불현 듯 마음 동해서 결정하는 경우도 있고 때론 그게 뜻밖의 더 좋은 것들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요행이거나, 혹은 오랫동안 잠재되었던 마음이 순간적으로 그 핵심을 파악했을 때 던지는 결정이다.

산에 오르다 보면 정상만 바라보고 그냥 내달리는 이들도 흔히 본다. 그 정상에 오르기 위해 나선 산행이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정상에서 인증샷은 찍을지 모르지만 산을 느끼고 산과 말을 나누고 산을 누리지 못한 사람이다. 물론 정상이라는 목표는 늘 유념해야 한다. 그러나 오르는 동안 펼쳐지는 엄청난 자연의 표정들을 놓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한걸음 올라갈 때마다 시야는 넓어지고,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는 그 즐거움이 없다면 산행은 시들한 스포츠일 뿐이다. 삶은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는데도 늘 마음이 밭고 바쁘다. 그 속도로 달렸기에 남보다 더 빨리 정상에 오를 수는 있겠지만 산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다.

정상만 바라보고 오르면 길이 더 힘들고 고되다. 선망과 바람으로만 삶을 버티고 목표의 달성만 품으며 사는 삶이 우리를 지배했다. 그렇게 저녁을 잃고 살았다. 길마다 골목마다 환하게 불이 켜지고, 공장이며 사무실도 불야의 연속이다. 그게 역동적일 수는 있겠지만 휴식은 없다. 저녁도 엄연히 삶의 과정이고, 쉼도 삶의 부분이다. 시골의 밤은 도회의 그것보다 훨씬 길다. 저녁 끼니 지나면 이미 길은 어둡고 한적하다. 조용한 밤, 조용히 하루를 마감하며 나를 바라볼 수 있어야 내일의 해를 더 도탑게 맞는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어둠을, 쉼을 잃고 산다. 그러면서도 그걸 역동적인 삶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저녁이 없는 삶이고 불쌍한 삶이다. 손에 쥔 잠깐의 물질적 소유와 화려한 과시로 포장하면서 그게 성공한 삶이라고 여긴다. 자연과 멀어질수록 그 삶이 피폐해진다는 건 잊은 지 까마득하다.

소유에만 집착하니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만 따진다. 남보다 많으면 우쭐하고 남보다 모자라면 우울하고 주눅든다. 나 자신의 기준이 없으니 스스로 만족하거나 날을 더 세워 삶의 밀도를 채울 생각이 없다. 정치도, 경제도, 지식도 그렇고 관계도 그렇다. 그래서 나누고 누릴 줄도 모르고 남의 것 더 뺏을 생각만 한다. 더 슬프게 하지 말아달라고 목숨 걸고 외쳐도, 광야의 예수처럼 40일 단식하다 결국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철심장은 정상만 고수하는, 꼭대기 오를 생각만 가득한 산행일 뿐이다. 그에게는 자연의 이치도 자연의 선물도 보이지 않는다. 그건 정상(頂上)이 아니라 비정상(非正常)이다.

더 많다고, 더 세다고, 더 높다고 우쭐대고 억누르지 말 일이다. 자연은 공평하고 정의롭다. 천천히 산길 오르며 산을, 자연을 누려보기를! 말난 김에 짐 꾸려 여러 날 먼 산으로 가야겠다. 서둘지도 게으르지도 않게.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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