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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중심부, 우리는 그 지옥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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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중심부, 우리는 그 지옥으로 갔습니다"

입력
2014.08.2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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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왓슨 지음ㆍ이수영 옮김

삼천리 발행ㆍ576쪽ㆍ2만5,000원

악명 높은 미시시피行

대학생 700여명 백인단체 폭력 맞서 전쟁 같은 민권수호 운동

“우린 검둥이를 미워하지 않아요. 다만 우리 가까이에 있는 걸 원하지 않을 뿐이죠.”

1963년 8월 28일 20만명이 넘는 군중이 워싱턴에 모여 마틴 루터 킹의 ‘꿈 이야기’를 들을 무렵 미국 전역에 여론조사원들이 파견됐다. 흑인에 대한 인식을 묻는 이 조사에서 백인의 71%는 “흑인은 냄새부터 다르다”고 했고 69%는 “흑인은 도덕관념이 느슨하다”고 했다. 흑인은 지능이 낮고 성적으로 난잡하며 꿈이 없다는 편견은 북부보다는 남부, 그 중에서도 미시시피주에서 가장 심각했다.

1964년 6월 미국 전역에서 모인 흑인과 백인 청년들이 손을 엇갈려 잡고 ‘우리 승리하리라’를 부르고 있다. 이들은 당시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이 가장 심했던 미시시피주로 떠나 훗날 민권운동의 이정표라 불리는 ‘프리덤 서머’의 서막을 연다. 삼천리 제공
1964년 6월 미국 전역에서 모인 흑인과 백인 청년들이 손을 엇갈려 잡고 ‘우리 승리하리라’를 부르고 있다. 이들은 당시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이 가장 심했던 미시시피주로 떠나 훗날 민권운동의 이정표라 불리는 ‘프리덤 서머’의 서막을 연다. 삼천리 제공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해방령을 발표한 이래 흑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적 제도가 조금씩 뿌리를 내렸지만 1960년대 미시시피주에서 흑인의 인권이란 그야말로 ‘꿈 같은 이야기’였다. 흑인 소작인들은 동 틀 때부터 어두워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종일 목화를 따고 3달러를 받았으며 비열하고 악랄한 수법으로 투표를 금지당했다. 유권자 등록을 하는 흑인은 어김 없이 테러를 당했으며 법원 유권자 등록 담당자를 한번 만난 것만으로도 신문에 이름이 실려 두들겨 맞거나 한밤중에 날아드는 총알에 벌벌 떨어야 했다.

폭력은 흑인뿐 아니라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백인에게도 쏟아졌다. 차별이 권리가 아니라 의무였던 곳, 민권운동가 로이 윌킨스에 따르면 “비인도적 행위와 살인, 폭력, 인종차별적 증오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록을 보유한 주”가 바로 미시시피였다.

1964년 6월 오하이오주 옥스퍼드의 한 캠퍼스에 700여명의 청년이 모였다. 25세 이하에 미국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한 가지 기준만으로 쉽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흑인과 백인. 백인 청년들은 주로 하버드, 예일, 버클리 같은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로 폴로셔츠와 캐주얼 바지를 입고 민권법안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나 미시시피주에서 온 흑인들은 같은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작업복을 입은 채 폭행과 피격과 고문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팔을 교차하여 손을 잡고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를 부른 뒤 미시시피행 버스에 올라탔다. 참가자 중 한 명인 크리스 윌리엄스는 미시시피로 떠나기 전 가족에게 편지를 보냈다. “미시시피는 올 여름 지옥이 될 거예요. 우리는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의 중심부로 들어갑니다…우리가 갈 곳이 어떤 곳인지 상상하기 어려우실 거예요. 지금은 나도 상상하기 어렵지만, 곧 알게 되겠죠.”

부르스 왓슨의 ‘프리덤 서머, 1964’는 지옥 같았던 그 해 여름, 미시시피주에서 벌어진 민권 수호 전쟁의 치열한 현장을 그린 책이다. 유럽 여행을 포기하고 미시시피로 간 대학생들은 흑인을 유권자로 등록시키고 자유학교를 열어 흑인 아이들을 교육했으며 질퍽한 흙 길을 걸어 자유와 평등의 메시지를 전했다. 백인 단체의 위협과 폭력이 헌법 위에 자리한 그곳에서 대학생들은 “미국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라고 부르짖었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풋내기 청년들의 작은 각성이 미국 전역에 균열을 일으키는 민권 수호 운동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사실적이고 박진감 있게 서술한다.

책은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2009년의 미시시피를 비추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흑인이 들어갈 수 없었던 교실과 카페에서 흑인과 백인이 나란히 앉아 흑인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올리고 선서하는 모습을 지켜 본다. 그날 프리덤 서머에 참여했던 활동가들은 10년 만에 서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서로의 업적을 치하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 여름의 시작을 이렇게 말한다. “그저 미시시피에 갔던 것인데, 그때는 감히 그러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뿐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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