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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모든 변사자는 ‘유병언’이다

입력
2014.08.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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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이 없는 죽음은 없다. 타살은 명백히 범죄에 의한 것이지만, 자연사나 자살조차도 죽음의 과정에 범죄적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청해진 해운 유병언 회장의 변사사건은 사인을 밝히지 못했다. 자연사, 자살, 타살 등 온갖 설만 무성하다.

생포할 수 있던 사람을 놓친 것에 더해 변사체로 발견된 뒤에도 40일 동안 행려사망자로 간주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DNA검사를 의뢰했고, 다행히 일치하는 DNA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대조할 DNA가 없었더라면 유 회장의 주검도 화장돼 행려사망자 공고로 끝나고 사건은 영구미제로 넘어갈 뻔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변사자 처리는 전국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유 회장 수사에서 나타난 검찰, 경찰의 눈먼 수사는 중대한 사회적 병리를 내포하고 있어 보인다.

유 회장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농민 박모 씨는 “영락없는 노숙자 행색이었다”고 말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온 경찰의 인식도 70대 농사꾼과 같았다. 돈 한푼 지니지 않은 그를 행려사망자 같다고 검사에게 보고했고, 검사도 그렇게 넘어갔다.

그의 사체가 발견됐을 당시 순천에는 그의 행방을 쫓는 언론사 기자들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별장에서 2㎞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된 변사체에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사건기자의 일과는 경찰서의 변사체 보고에 관한 점검에서부터 시작돼야 함에도 말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생각한다. 국내에서 한 해에 4만 건에 가까운 변사자가 발생한다. 이 중에 1만5,000건 정도가 자살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자 1위의 나라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사건도 태산인데 죽은 사람 처리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적당히 처리하고 마는 귀찮은 업무가 돼버린 것 같다.

게다가 변사체로 발견됐을 당시 유병언의 사체는 참혹을 극한 형태였다. 그 끔찍한 형체로 인해 경찰은 사체는 물론이고, 신원을 밝힐 수 있는 유력한 단서였던 유류품 수사에마저 눈을 돌렸다. 외제 브랜드의 점퍼 및 신발, 금이빨 10개의 범상치 않음이나, 더욱이 구원파와 직접 관련된 유류품의 의미조차 흘려버렸다.

시체 옆에 유 회장이 은신했던 순천의 별장에서 발견된 돈 가방이라도 놓여있었다고 가정해보자. 경찰이 그 시체를 가벼이 넘겼을까? 유병언 수사의 허점은 결국 우리 사회에 만연된 인명경시, 외형중시, 황금만능 풍조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식이라면 행려사망자 공고 제도를 바꿔 시ㆍ군에서 행려사망자를 화장한 뒤 유가족을 찾는 현행의 ‘처리 후 공고’에서, 발견시점 공고제로 하는 것이 낫겠다. 만약 유 회장의 경우 발견시점에서 사체의 상태와 유류품이 일반 공개됐더라면 많은 시민들의 눈에 의해 이내 신원이 확인될 수 있었을 것이다.

치매와 같은 질병, 또는 범죄에 의한 실종자와 함께 행려사망자의 수도 늘고 있는 여건에서 검토돼야 할 제도개선이다. 주검의 이유를 밝혀내서 진실을 규명하고, 억울한 주검을 없이하고, 혹시 있을지 모를 고귀한 주검을 찾아내는 것은 국가와 언론의 책무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야 할 것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다. 수사관이나 기자의 예지는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 없이는 발휘되지 않는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신여성이었던 나혜석의 죽음도 행려사망자로 관보에 실려 세상에 알려졌다. 앞으로 검경은 모든 변사자를 대할 때 유병언 회장 보듯 하기를 바란다.

임종건 언론인ㆍ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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