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세월호'에 손 내민 영화인, 교황 말씀에 응답하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세월호'에 손 내민 영화인, 교황 말씀에 응답하다

입력
2014.08.20 04:40
0 0

간절히 도움 구하는 사람에게 순수하게 손내민 것

단식 동참하는 영화인들, 정치적으로 해석할 필요 없어

25세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한 험프리 보가트(왼쪽)와 로렌 바콜은 '빅슬립'(1946)등 여러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25세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한 험프리 보가트(왼쪽)와 로렌 바콜은 '빅슬립'(1946)등 여러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존 가필드는 1940년대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배우다. 미국 뉴욕 빈민가에서 나고 자란 그는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가 주연한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1946)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필름 누아르의 걸작이다. 당대의 육체파 배우 라나 터너(‘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에디가 탈옥 계획을 감추기 위해 벽에 붙인 대형 사진 속 그 여배우)와 호흡을 맞춘 작품이었다.

가필드의 화려한 할리우드 이력은 순식간에 빛이 바랬다. 1940년대 후반 매카시즘의 광풍에 휘말리면서였다. ‘빨갱이’와 어울린다는 의심을 받고 미국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갔다. 가필드는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공산주의자들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여론은 가필드 편이 아니었다.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그를 캐스팅 명단에서 지웠다. 스타에서 실업자 신세가 된 가필드는 이혼이라는 무거운 불행이 겹치며 심장병을 얻었다. 1952년 39세에 숨을 거뒀다. 가필드는 매카시즘에 희생된 할리우드 영화인 가운데 가장 억울한 피해자 중 하나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던 시대였다. 미국인들은 2차 세계대전의 승리라는 숙취에서 깨자마자 소련이라는 가공할 가상적이 눈 앞에 있음을 깨달았다. 빨간 색이 공포로 인식됐다. 약삭빠른 스튜디오는 눈엣가시였던 영화인들 제거에 매카시즘을 악용했다. 월트디즈니가 특히 앞장섰다. 반공주의자였던 무명 배우 로널드 레이건은 광풍에 올라타 정치권에 진입했다. 의회에 나가면 증언을 거부하라며 진보적 영화인들을 다독였던 엘리아 카잔(‘에덴의 동쪽’과 ‘초원의 빛’) 감독은 정작 동료들 이름을 대고 혼자 살아남았다. 영화계 노조는 내부 권력투쟁으로 지리멸렬했다.

대부분이 숨을 죽이던 1947년 10월 몇몇 배우들이 거리에 나섰다. 할리우드 배우 험프리 보가트, 로렌 바콜 부부가 시위대를 이끌었다. 의사당 앞에서 미국 수정헌법 1조를 언급하며 사상의 자유를 외쳤다. 자신들이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이성을 잃은 마녀 사냥에는 반대한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보가트는 남성미 물씬 풍기는 탐정 역으로, 바콜은 뭇 남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마성의 여인 역할로 대중을 사로잡던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인기가 밑천이라 대중의 시선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보가트와 로렌은 명분을 택했다.

보가트와 바콜이 21세기 한국에서 활동했다면 ‘개념 탑재 연예인’이라 불리면서도 꽤 구설에 휘말렸을 것이다. 바콜은 12일 90세로 삶을 마쳤다. 그의 죽음은 할리우드가 빚어낸 최고의 정치적 ‘명장면’을 새삼 떠올리게 했다.

서울 광화문 광장 세월호 참사 유가족 단식 농성장에 영화인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하루씩 바통을 주고 받으며 동조 단식을 하고 있다. 배우 송강호, 김혜수 등은 사진으로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18일 한국을 떠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중 이런 말을 남겼다. “절규하며 우리에게 도움을 간청하는 이들을 밀쳐내지 마라.”

영화인들의 행동을 정파적 이해타산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간절하게 도움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순수하게 손을 내밀었다고 보고 싶다. 단식에 참여한 몇몇 영화인들이 “(지난달 14일부터 단식 중인) 김영오씨의 건강이 좋지 않아 정말 걱정”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순간을 우리는 지난 4월 ‘생중계’로 지켜봤다. 또 하나의 목숨이 위태롭다. 빨리 더 많은 손을 내밀어야 한다.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