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는 살아남은 이들에게 던져진 가장 큰 숙제입니다.”
재일학자 강상중 세이가쿠인(聖學院)대 총장의 첫 소설 ‘마음’(사계절)이 국내 번역됐다. 강 교수는 도쿄대 교수에서 지난해 세이가쿠인대로 옮겨 올해 4월 한국인 최초로 일본 종합대 총장에 임용됐다. 일본에서 100만부 넘게 팔린 인문서 ‘고민하는 힘’과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란 책에서 사용한 ‘귀태’라는 단어로 국내에서도 자주 그의 이름이 언급돼 왔다.
‘마음’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2010년 아들의 죽음, 2011년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연달아 겪으며 죽음에 대해 성찰하게 된 저자의 고민이 픽션의 형태로 담겼다.
19일 서울 광화문 모처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강 교수는 “나는 소설가가 아니지만 이번에 ‘소설 같은 것’을 쓰게 됐다”며 “짧은 기간에 수많은 죽음을 접하면서 살아남은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숙고하며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마음’은 최근 세월호 참사를 겪은 한국사회에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지난해 일본에서 책이 나온 후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세월호 사태가 벌어져 매우 놀라고 두려웠다”며 “국가와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소설 속에는 강 교수가 실명으로 등장해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청년과 이메일로 대화한다. 왜 나는 살아 남았는가, 어차피 죽을 거라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등 죽음을 경험한 이들의 마음 속에 싹틀 법한 고민에 함께 답을 찾아나가는 형식이다. 이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아베 정권은 도쿄 올림픽이라는 새 프로젝트를 통해 대규모 참사에 ‘망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빨리 죽음을 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멈춰 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몇 년 후 이 사건이 완전히 잊혀지고 없던 일처럼 돼버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책은 소설과 인문 에세이의 중간 성격을 띠지만 굳이 소설이라는 장르를 택한 이유는 강 교수의 아들 때문이다. 소설 속 강 교수와 교류하는 청년 나오히로는 죽은 아들의 이름이다. 강 교수는 “아들이 등장한다는 점 때문에 소설 외 다른 장르는 생각할 수 없었다”며 “지금 한국과 일본에 필요한 것은 경제적 회복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에 이 공허함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정치나 경제가 아닌 문학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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