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개봉하는 ‘내 연애의 기억’은 요즘 보기 드문 혼성 장르의 로맨스 영화다. 여섯 번의 실연 끝에 만난 남자와 결혼을 준비하던 욕쟁이 아가씨가 예비 신랑의 외도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달콤했던 이야기가 갑자기 살벌해진다. 웃기다가 갑자기 무서워지고 끝날 때쯤엔 아련하고 쓸쓸해지는 영화다.
급선회하는 영화의 중심에 배우 송새벽(35)이 있다. 그는 극중 수수께끼 같은 남자 현석으로 출연해 은진(강예원)을 혼란에 빠뜨린다. 영화의 제목이 ‘내 연애의 기억’인 것은 이야기가 은진의 시점으로 흘러가기 때문인데, 현석 입장이라면 영화의 제목이 ‘내 연애의 비밀’ 또는 ‘내 연애의 속사정’이었을 것이다.
기자와 만난 송새벽은 “평소 친하게 지내는 동갑내기 친구 강예원이 먼저 캐스팅된 뒤 나를 추천했다”고 했다. 이권 감독으로부터 시나리오를 받은 강예원이 현석 역으로 송새벽의 출연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석은 연기하기 쉽지 않은 인물이었다.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은진을 잘 속여야 하는 역할인데 어느 정도 보여주고 숨겨야 하는지 미묘한 부분이 고민스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어떤 장면에선 너무 많이 보여준 게 아닌가 걱정스럽습니다.”
‘내 연애의 기억’은 특별 출연으로 참여한 ‘조선미녀삼총사’를 제외하면 ‘아부의 왕’(2012) 이후 1년여의 공백 끝에 출연한 영화다. 영화 ‘방자전’ ‘시라노: 연애조작단’(이상 2010), ‘위험한 상견례’(2011)의 연이은 성공으로 탄탄대로를 걷던 그가 슬럼프에 빠진 뒤 출연한 첫 영화라 의미를 남다르다.
“많은 일이 겹쳤어요. 예전 소속사와 갈등을 겪었고 ‘아부의 왕’의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아 신경 쓰인 것도 있었죠. 자괴감에도 빠졌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지나고 보니 제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코믹한 캐릭터를 반복적으로 소모한다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계에 갓 이름을 알린 배우가 원하는 대로 골라 출연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방자전’ 이후 비슷한 캐릭터 제의가 많았어요. 제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골라 출연할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작품에 따라 연기 변신을 계획하는 성격도 아니고요. 지금도 그래요. 마음이 끌리면 하는 것이지 ‘코미디니까 안 한다’라는 생각은 없습니다.”
이권 감독은 송새벽의 다면적 특성을 활용했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어눌하고 코믹한 면과 ‘마더’와 ‘도희야’의 차갑고 섬뜩한 면을 한 인물에 녹여냈다. 송새벽은 “현석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말도 안 된다는 생각보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그런 점에서 관객이 재미있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내 연애의 기억’을 시작으로 송새벽은 쉼 없이 내달리고 있다. 촬영은 더 늦게 했지만 개봉은 먼저 한 ‘도희야’로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고 가족 코믹극 ‘덕수리 오형제’ 촬영을 마친 뒤 요즘엔 ‘도리화가’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머리를 기른 것은 새 영화에서 상투 틀고 판소리학당의 북 고수로 출연하기 위해서다.
“재미있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재고 따지다 보면 끝이 없어요. 큰 돈 벌자고, 나 혼자 즐기자고 시작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부터 관객과 소통하고픈 목적은 있었죠.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하고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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