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교전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가 최악인 가운데 17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야파에서 특별하지만 매우 위험한 결혼식이 열렸다. 신랑은 이슬람을 믿는 팔레스타인인 마흐무드 만수르(26), 신부는 유대인 모렐 말카(23)로 인종과 종교의 갈등을 초월했다. 외신들은 금지된 사랑을 빗대 ‘중동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불렀다.
가디언과 예루살렘포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말카는 5년 전 만수르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이들이 나고 자란 야파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봉기와 이스라엘 경찰의 진압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사랑 앞에 종교와 인종 분쟁은 장애가 아니었고 말카는 결혼을 앞두고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순탄할 것으로 예상되던 결혼식은 지난 6월 납치됐던 이스라엘 소년 3명의 시신이 발견되고 곧이어 팔레스타인 소년을 잔인하게 생매장한 보복 살인이 벌어지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얼마 안 돼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터졌고 사망자(팔레스타인 2,016명, 이스라엘 67명)가 급증하는 와중에 두 사람의 결혼 소문이 텔아비브에 퍼졌다. 이스라엘 극우단체 ‘레하바’는 13일 페이스북 페이지에 만수르와 말카의 결혼식 장소와 시간을 공개하고 “우리 자매에게 유대인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요청하자”고 나섰다. 말카의 아버지도 이스라엘 TV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말카의 결혼을 반대한다”며 “사위의 문제점은 그가 아랍인이라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신변위협 우려가 높아지자 만수르는 극우단체가 결혼식장 밖에서 항의시위를 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법원은 그러나 17일 오전 극우단체들이 결혼식장 200m가량 떨어진 주차장에서 항의시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안전 문제를 우려한 만수르 부부와 피로연 식장 측은 주변을 지킬 경비원 30여명을 고용했다. 경비원 일당 4,000달러(407만원)는 신혼부부와 예식장 측이 반씩 부담했다. 현지 경찰도 경찰관 수십명을 결혼식장 주변에 배치해 폭력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한 때 레하바 시위대가 저지선을 뚫고 예식장 현관까지 돌진했으나 인간 띠를 이룬 경찰과 보안요원들에게 막혀 식장 진입에는 실패했다. 시위대는 결혼식장 밖에 모여 “아랍인에게 죽음을”, “너의 집은 불태워질 것이다”라는 저주 섞인 구호를 외쳐대다 해산했다.
만수르는 결혼식 후 “그들은 우리를 깨뜨리기 위해 애를 썼지만 우리는 더 강해졌다”고 말했고 말카는 “우리는 끝까지 행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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