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성공한 영국 화가 중 한 사람인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들을 보면 기괴한 기분이 든다. 큰 캔버스에 사람의 형상이 혼자 있거나 빈 방에 고립되어 있거나 우리에 갇혀 있다. 어두운 색감에 거친 붓 감이다. 사람들의 얼굴은 거의 일그러져 있고 나체도 전혀 아름답지 않은 섬뜩한 모습이다. 고함을 지르고 있는 비인격적인 형상은 편안한 마음에서 나올 수 없다.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분노, 자신의 고통과 소외가 담겨 있다.
베이컨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군대 장교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바 있다. 그는 어렸을 때 집 근처에 영국 군대가 있어서 계속 군인들이 힘들게 훈련하는 소리들을 들으면서 자랐다. 심한 천식과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한 잦은 여행과 이사 때문에 정규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엄마는 사교계 생활을 즐겨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아서 그는 늘 집에 혼자 남겨지곤 했다. 어느 날 베이컨이 엄마의 속옷을 입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의 아버지는 그를 집에서 쫓아 내버린다. 이후 동성애적 성향을 가지게 되었고 종교에도 거부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언제나 외로웠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냉정함과 폭력성을 경험했다. 그의 작품에는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인간 내면의 어두움이 반영되어 표현되고 있다. 일그러진 사람의 형상에서 아름다움이 아닌, 인간이 지닌 고통과 소외, 그리고 죽음, 깊은 불안을 볼 수 있다. 베이컨은 특히 눈을 그리지 않음으로 인해 영혼도, 인간성도 없는 인간을 표현했다고들 한다. 눈이 없지만 대신 입이 강조되어 있다. 입은 어떤 신체기관인가. 입은 감각을 받아들이는 가장 본성적인 입구이자, 대화를 하면서 생각하는 이성적인 부분이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폭력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을 극적으로 강조하면서 베이컨은 동물적인 인간의 욕구를 표현한 것이다. 그 역시 인간은 욕구로 이루어진 동물과 같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고 죽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이며 우리의 욕구로 의미를 부여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철창 안에 갇혀있거나 어두운 곳에 혼자 있는 모습 또한 주변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소외된 절망감을 보여준다.
베이컨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바로 현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폭력이 그대로 표현된 것 같다. 언어폭력이 난무하고 상사는 부하 직원에게 함부로 말을 하면서 그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조직 응집력을 높이기 위해 그 누군가를 희생양을 만들어 왕따를 시키고 괴롭히는 과정에서 우리라는 응집이 강해진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모든 조직에서 이런 왕따현상이 존재한다. 특히 복종과 충성이 중요한 조직일수록 왕따와 폭력은 더 만연하다. 실제로 꽃다운 20대에 군대라는 조직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잔인한 만행이 얼마나 많은가. 그 고통을 못 견디고 자살을 택하기도 하고, 구타에 의해 사망에까지 이르는, 잔인한 가슴 아픈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하면서 위계서열을 잡으려는 거다. 바로 동물적인 본능이다.
인간의 본능이 때론 동물보다 더 잔인하다. 동물들은 같은 종 안에서 서열을 만들기 위해 서로 공격을 하지만 상대가 힘이 없고 약해진 것을 확인하는 순간 공격을 멈춘다고 한다. 바로 같은 종에 대한 나름대로의 배려이다. 그런데 동물보다 더한 잔인한 본능이 인간에게 흐르고 있는지 모른다.
비단 군대 조직만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의 왕따와 폭력을 경험하게 되고 한편으로 이에 길들여지고 있다. 성인사회 또한 마찬가지이다. 같은 동료 간의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서로 간 인격적인 비방과 모함은 정치계든 기업에서든 도처에 난무한다. 승진을 위해, 내 이득을 위해, 목표를 위해, 우리 내면의 잔인함을 드러내곤 한다. 무조건 상대 탓만을 하면서 상대의 고통과 피해는 안중에 없는 인간 사회의 잔인함과 폭력성. 베이컨의 그림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가 간과한 현 우리 사회의 잔인함을 반성해 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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