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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순진한 양의 냄새를 가진 목자가 오셨다

입력
2014.08.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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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께서 오셨다. 교황님은 내가 바라보는 방향의 가장 먼 곳에서 나타나는 분이시다. 작은 차의 창문을 내리고 특유의 미소로 화답해주시는 그 분을 본다. 교황님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순진한 얼굴을 가진 분이시다. 세상의 문법으로 보면 참으로 힘이 없는 순진함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만들어 주는 분이시다. 가톨릭 신자도 아닌 내 앞에 날마다 기도라는 말을 놓아주신다. 양심이라는 박동이 무엇인지를 뒤척이고 알아가게 해주는 분이시다. 내 난폭한 얼굴을 순진한 얼굴로 자꾸 돌려놓는 분이시다. 인간이라는 증명은 이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온화하게 깨우쳐주는 분이시다.

작년 3월 14일, 교황 즉위 첫날 미사에서 “세속적 가치를 앞세운다면 우리는 주교일 수도, 사제일 수도, 추기경일 수도, 교황일 수도 있지만 예수의 제자는 아니게 된다”고 말씀하셨을 때, 부활절을 앞둔 성목요일에 사제, 남성에게만 행하던 관례를 깨고 여성과 이슬람교가 포함된 소년원 아이들에게 세족식을 해 주시며, “희망을 도둑맞지 마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나는 속수무책으로 울었다. 희망을 도둑맞은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으며, 높이, 멀리 던지라고 있는 것이 정신임을 잊은 채, 세속적 가치만을 묻고 있던 나의 황폐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세상 끝에서 데려온 사람.’ 청빈한 아씨시의 성인 프란치스코를 교황 즉위명으로 택한 첫 예수회 소속 교황. 최초의 남미 교황. 일반 사제 앞에 무릎을 꿇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고해한 첫 교황. 언제나 고통 받는 약자들부터 돌보시는, “참된 권력은 섬김”이라는 교황.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청하시며, 늘 낮은 곳에 임하시는 교황.

낮은 곳에 임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누구나 낮은 자리에 나타날 수는 있을 것이다. 임한다는 것은 단순히 높은 곳에 있던 자가 그 자리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다다르는, 즉 기어이 닿는 것이다. ‘닿음’, ‘깃듦’은 모습 안에 담긴 진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무형의 그것만이 낮은 자리를 ‘거룩한 땅’으로 만든다. 참 이상한 것이다. 똑같은 행위를 한다고 해도 마음은 매우 정확하게 전해진다. 그것은 언어로도 전환되지 않는 것이며 전환될 수 없는 것, 그래서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전달 도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교황님이 늘 넘치게 사용하시는 ‘참된 권력’은 진심으로, 그러니까 온 힘을 다해, 온 마음을 다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약자의 편에 나타나는 것이다.

척박한 땅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사랑이 아닐 것이다. 또한 인간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우리도 굳이 인간일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교황께서는 말씀하신다. “우리는 양들과 똑같은 냄새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삶’이라는 지상의 나눔은 서로가 ‘같은 냄새’를 갖게 되는 것이다. 양의 냄새는 분명 양의 것이지만 양을 돌보는 자의 것이 되기도 하므로.

지난 일요일 단원고 앞 공원에 갔다. 건축가,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마음을 모아 ‘학교 가는 길’이라는 작은 건축물을 만들고 있었다. 단원고 아이들이 광복절에 교황님을 만나러 간다는 소식을 현장에서 전해 듣고 얼마 안 있어 현장에 폭우가 왔고 비가 그치자 커다란 쌍무지개가 떴고 어두워지자 슈퍼문이 떴다. 그것은 우연의 일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닐까. 그곳에 모인 어린 손들이 그 시간들을 만나고 나자 비에 젖은 나무에 더 열심히 못질을 하던.

순진한 양의 냄새를 가진 목자께서 고통과 좌절과 슬픔에 휩싸인 우리나라에 오셨다. “하느님은 힘이나 권력이 아닌, 갓 태어난 아기처럼 부러질 듯한 연약함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 ‘사랑을 도둑맞지 마라’는 복음을 전해주러 오셨다고, 교황님은 나의 순진한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해주셨다.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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