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이 단어를 접할 때마다 먼저 이탈리아 영화감독 ‘로베르토 베니니’가 떠오른다. 1999년 그가 제작, 주연을 맡아 큰 감동을 안겨준 동명의 영화이래 이 문구는 책자와 드라마 등에 차용되며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제목과 달리 영화가 유대인 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소재를 다룬 것처럼, 모티브가 됐다는 글귀의 주인공 역시 충격적이고 자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20세기 비운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 이야기다.
1940년 8월 20일 멕시코 코요아칸의 한 저택. 삼엄한 외부 경비와 어울리지 않게 2층 서재에는 사내 둘 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프랭크, 서류 어디 있나?”’프랭크 잭슨’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던 메르카데르는 가방을 뒤져 논문을 건넸다. 테이블에 앉은 트로츠키가 서류를 탐독하기 시작하자 메르카데르는 레인코트에 감춰둔 등산용 피켈을 꺼내 주저 없이 뒤 목덜미를 향해 강하게 내리찍었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트로츠키에게 암살자는 다시 피켈을 겨누었지만 그보다 빨랐던 건 거실에 대기하던 경호원들이었다. 무장한 수 명의 경호원들이 순식간에 범인을 제압한 후 ‘죽여도 되느냐’는 눈빛을 건넸고 쓰러져있던 트로츠키는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대답했다. “죽여서는 안 된다. 배후를 밝혀야 한다”
트로츠키는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영영 숨이 돌아오지 않았다. 레닌 사후, 구 소련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그는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이국을 떠돌다 이 날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스페인 태생 공산주의자의 손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이다.
“의식을 깨우친 이래 나는 43년의 생애를 혁명가로 살아왔다. 나는 화해할 수 없는 무신론자로 죽을 것이다. (중략) 인생은 아름답다. 훗날의 세대들이 모든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 삶을 마음껏 향유하기를…”
트로츠키는 생을 마감하기 6개월 전인 40년 2월, 망명지인 멕시코에서 일기를 통해 유언 아닌 유언을 남겼다. 혁명가의 눈에 비친 인생은 아름다웠다.
볼셰비키 혁명가이자 마르크스 이론가였던 레프 다비치 트로츠키는 1879년 우크라이나의 부유한 농가에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영어식 이름을 따서 레온 트로츠키로 불린다. 영국 런던에서 레닌을 처음 만나 서로 지원군이 되었고 1917년 러시아 민주혁명을 이끌며 소비에트연방을 건설에 앞장섰지만 권력투쟁에서는 실패했다. 레닌이 죽고 난 후 당의 노선을 두고 스탈린과 대립한 그는 급진노선을 걸으며 ‘연속혁명론’을 주창했지만 결국 ‘인민의 적’으로 몰려 당에서 제명당했고 27년 해외로 추방됐당했다. 스탈린의 대대적 숙청으로 측근과 가족 대부분을 잃으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던 그는 최후의 저서로 ‘배반당한 혁명’을 남긴 후 40년 8월 20일 암살범의 흉기에 반짝였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손용석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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