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학습'으로 경기력만 저하
무거운 방망이에 책까지 얹는 격
고교야구 주말리그는 지난 7월 모든 일정을 마쳤다. 전국 62개 고교야구팀이 지난 4월부터 상ㆍ하반기로 나눠 리그를 치렀고 왕중왕전을 통해 최고를 가렸다. 2011년 정부 시책에 따라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과 수업 결손을 최소화한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탁상 행정에서 비롯된 주말리그의 실상은 야구계의 기대와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
주말리그는 고교 야구선수들이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오전부터 오후까지 정규수업을 받고 난 뒤에 훈련을 하고, 경기는 주말에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일선 고교 팀의 감독과 교사, 학부모들은 공부도, 야구도 모두 제대로 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에게 학습에 대한 동기 부여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기초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학생 선수들에게 느닷없이 미분과 적분을 가르치는 식이다.
동문 관계도 열악해지고 후원은 뚝 끊겼다. 이명섭 휘문고 감독은 “8강, 4강 순으로 단기간에 대회가 함축적으로 열려야 하는데 한 경기를 한 뒤 그 다음 주말에 경기를 하니 동문들의 관심이 줄 수밖에 없고, 애교심은 언감생심”이라고 꼬집었다. 주말리그가 치러지는 목동구장 티켓 판매 담당자는 “주말리그가 열리는 날 하루에 100장 내외 밖에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강제 학습’에 찌든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쳐 고교야구의 근간을 흔들 위기에 처해 있다. 수업을 마치면 보통 오후 4시50분, 야간훈련을 끝내면 밤 9시30분이다. 이튿날 오전 7시에 등교한다. 이 감독은 “학습을 병행해야 하는 일주일 동안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을 리 없다. 우수 선수는 나올 수 없는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기량이 좋은 선수만 주말마다 등판시키다 보니 투수들의 혹사 문제도 불거진다.
장채근 홍익대 감독은 “주말리그 시행 이후 기량이 우수한 선수는 급격히 줄었는데 하물며 학력 기준까지 적용하면 대학에 진학할 선수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운동 선수들에게 ‘국ㆍ영ㆍ수 중심의 교과 성적’이라는 기준을 내민다면 교과 성적 때문에 또 다른 사회적 열등생으로 내몰릴 수 있다. 운동을 중도 포기한 뒤에도 사회에 나가서 살아남으려면 학력 위주의 사회 풍토를 바꾸는 것이 먼저다.
주말리그가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라는 데는 야구계가 공감하고 있다. 다만 점진적으로 도입하자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성낙수 제주고 감독은 “초등학교부터 점차적으로 주말리그를 시행해야 학습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고, 야구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 선수에게 필요한 맞춤형 교육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내민 ‘학습권 보장제’는 무거운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는 선수들에게 더 무거운 책을 얹어 준 느낌이다. 이 감독은 “김연아와 박지성 같은 선수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봤다면 운동 선수에게 필요한 전문 교육이 뭔지 모두가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야구 드래프트 시기를 조정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지난해 부활한 봉황대기는 야구인들의 큰 환영을 받았지만 신인 2차 드래프트가 열리는 8월25일 이후에 열린다. 프로 직행을 노리는 선수들에겐 별 다른 동기 부여가 되지 못한다.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둔 선수들에게도 시기가 애매하다. 이 감독은 “대학들의 1차 수시전형이 9월, 2차는 11월이다. 요즘은 11월까지 야구할 만한 날씨”라면서 “주말리그를 11월까지 치르면서 드래프트 시기도 11월로 늦추든지 봉황대기를 앞쪽으로 당긴다면 주말리그의 취지에도 맞고 학생 선수들에게도 큰 동기 부여가 될 것”이라고 대책을 제시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