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사랑스러운 남매가 있다. 가끔은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고 사이 좋게 지내는 아이들이다. 아들인 건우는 곧 7학년이 되고 딸인 우영이는 5학년이 된다.
오늘은 우영이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영이는 에너지가 넘쳐 나는 꼬마 숙녀로 특히 운동을 좋아한다. 미국에 와서 여러 가지 운동을 접해 보았으며 지금은 축구와 체조 두 종목을 하고 있다. 축구는 일주일에 2번, 하루에 1시간30분 정규 연습을 하고 게임이 있으면 일주일에 3, 4일 정도 한다. 체조는 좀더 힘든 종목으로 일주일에 4번, 하루에 4시간의 훈련을 한다. 그렇다 보니 우영이는 일주일이 벅찰 정도로 돌아간다. 그래서 한가지 종목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우영이에게 물어보면 우영이는 “나는 둘 다 너무 재미있기 때문에 지금은 두 종목을 다 하고 싶어요” 라고 이야기 한다.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서 바로 축구를 가고 체조를 가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점점 수준이 높아져 훈련의 강도도 어려워지고 있다.
처음에 나는 체조라는 종목이 기술 스포츠인줄 알았는데, 반대로 파워 스포츠였다. 왜냐하면 체조를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체조 훈련의 대부분이 체력 훈련에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하루에 4시간 훈련 중 2시간 정도를 체력 훈련(conditioning)에 매진하는데 그 강도가 얼마나 센지 몇몇 선수들은 훈련 중간에 구토를 하거나 어지럼증을 호소하기도 하며,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가끔씩 가서 보고 있으면 상당히 안쓰럽다. 과연 체조를 하기 위해서 저렇게 하는 것이 맞는 방법인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이렇다 보니 우영이가 체력훈련에 대한 부담으로 체조를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해서는 너무 재미있으며 일주일 내내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체조를 가고 싶지 않다고 할 정도로 고통스러워진 것이다. 그래서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우영아 힘들면 때려 쳐!” 라고 농담을 하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우영이와 몇 가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에게 이야기한 것은 체력 훈련에 대한 부담감이었는데, 그 날 저녁 우영이가 엄마와 둘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눈 후 들어 보니 사실 체력운동에 대한 것은 표면적인 이유였다. 체조 가는 것이 힘들고 괴로웠던 것은 체력훈련도 물론 있지만 더 내면적인 이유는 기술이 늘지 않는 것에 대한 괴로움이었다고 한다. 체조는 마루, 철봉, 뜀틀, 도마 네 종목을 연기하는데 우영이가 운동 신경이 좋아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친구들 보다 빠른 성장을 보였고, 대회에 나가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에 기뻐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친구들의 실력이 향상되고 반대로 자신이 자꾸 뒤처지는 것 같아 너무 괴로웠다고 한다. 게다가 거의 한 달을 한국에 다녀오면서 빠진 관계로 같은 레벨의 친구들이 소화해 내는 동작을 우영이는 하지 못하는 것이 괴롭고, 체조를 다니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어린 나이에 한 달은 굉장히 큰 기간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며 더군다나 새로운 기술은 적응이라는 단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좀 더 해 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야구 기술로 빗대어 좋은 타격을 하기 위해 하루에 수백 개 이상을 매일 쳐도 될까 말까 한데, 하물며 체조의 기술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다면 누구나 체조를 할 수 있지 않겠냐며 이런저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한 나도 지나고 나서 보면 하루도 쉬운 날이 없었다. 특히 중학교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는데 1학년이 17명, 2학년이 15명, 3학년이 10명 이상으로 거의 50명에 가까웠다. 그렇다 보니 시합에 출전하는 것은 둘째 치고 연습 시간에 배팅 한번 칠 기회가 없었다. 매일 체력 훈련만을 해야 했으며 정말 그때는 자주 야구를 그만두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이어 프로에 입단했을 때도 나름대로 야구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2군에 있는 선수들보다도 못한 것 같은 현실에 좌절했던 경험도 들려 주었다. 그리고 1군 선수가 되어 매일 게임을 하며 잘 해도 고민, 못 해도 고민이었던 시절, 하루에 모든 일정을 게임에 맞추고 살며 어떻게 하면 야구를 잘 할까 고민했던 이야기들, 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야구 선수 생활…. 우영이도 공감 가는 듯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느끼는 고민이며 운동선수라면 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고민의 깊이가 깊다. 거기에 더해서 기술에 대한 고민, 경쟁 상대에 뒤처지는 것에 대한 괴로움을 겪게 된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 1주일, 한 달, 그리고 1년 더 나아가 먼 장래를 보고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영이가 당장의 체력 훈련으로 인한 고통보다 기술 향상 속도에 대한 괴로움이 더 큰 것이라면 좀 더 해 보고, 그래도 어렵다면 아빠에게 이야기하라고 해 주었다. 그만둘 수 있는 마음도 큰 용기라고 해 주면서 말이다. 우영이의 눈물이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성장통이라는 생각이 든다. 볼링그린 하이스쿨 코치ㆍ전 LG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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