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 밀 감자밥

여름이 제철인 밀은 우리 식탁에 쌀만큼 자주 오르는 곡식이다. 밀 요리는 무척이나 다양한데, 밀가루 반죽을 숭숭 썰어 멸치국물에 끓여낸 칼국수, 애호박과 양파를 듬뿍 넣고 끓인 칼칼한 수제비, 쫄깃한 면발과 시원한 국물의 밀면, 우리나라 대표 간식 라면과 떡볶이…

밀은 다양한 음식에 사용되지만, 한 번이라도 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싶다. 또 우리가 먹는 밀이 전부 수입산이라고 알고 있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토종 식재를 돌아보는 데 소홀한 것이다. 기원전 300년부터 우리 땅에서 종자가 보존돼 내려오는 토종 밀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앉은뱅이 밀’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밀의 가장 큰 특징은 작은 키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밀은 외국산 품종을 계량한 ‘금강밀’과 ‘앉은뱅이 밀’ 두 가지다. 둘의 생김새가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앉은뱅이 밀의 줄기가 한 뼘 정도 더 짧은 걸 알 수 있다.

이 키 작은 밀에는 전 세계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몫을 해낸 사연도 담겨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세계 유수의 과학자들이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해서 밀 품종을 개발했지만, 줄기가 길어 쓰러지거나 아래로 꺾이는 바람에 수확량이 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미국 농학자인 노먼 볼로그가 앉은뱅이 밀의 작은 키와 강한 생명력에 주목해 이를 ‘소노라 64호’라는 품종으로 개량, 밀 생산량을 크게 증가시켰고 그 뒤 많은 밀 품종들이 앉은뱅이 밀의 우수성을 따라 작은 키도 물려받게 됐다. 볼로그 박사는 이 밀 품종 개량의 공로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앉은뱅이 밀은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우리 토종 곡식인 것이다.

이 앉은뱅이 밀의 수확은 7월부터 8월까지가 한창이다. 막 수확한 밀을 도정하면 구수한 향과 울긋불긋한 빛깔의 밀을 볼 수 있다.

갓 도정한 앉은뱅이 밀을 곱게 빻아 요리를 시작해보자. 구수한 향이 나는 밀가루에 소금과 물을 넣고 열심히 치대면 누런 빛깔의 반죽이 되고, 이를 냉장고에 넣어 잠깐 숙성시키는 동안 냄비에 물을 받아 멸치와 다시마, 무를 넣고 끓여 국물을 낸다. 애호박은 채썰어 참기름과 조선간장에 고소하게 볶아내고, 양파와 하지 감자를 큼지막하게 잘라 감칠맛 나는 멸치국물에 넣고 끓이면 육수 준비는 끝이다.

반죽에 밀가루를 묻힌 후 가늘게 썬 칼국수를 방금 완성한 육수에 넣고 끓인다. 7, 8분이면 구수한 향이 올라오고, 조금 더 끓이면 앉은뱅이 밀 칼국수가 완성된다. 그 위에 짭짤한 애호박 볶음을 고명으로 올리면 오늘 점심은 여름 제철 식재료로 완성된 국수 한 그릇이 되겠다.

칼국수 말고도 앉은뱅이 밀을 맛있게 먹고 싶다면, 제분하지 않고 껍질만 깐 통밀을 넣고 밥을 지어보자. 여름에 수확해 더 맛있는 알감자까지 숭덩숭덩 잘라 쌀 위에 올려 밥을 지으면, 밥솥을 열었을 때 울긋불긋한 붉은색이 어우러지고 밀 향이 가득한 ‘앉은뱅이 밀 감자밥’(사진)을 맛볼 수 있다.

따뜻한 밀 감자밥에 채소를 듬뿍 넣고 끓인 된장찌개 한 그릇은 어떨까? 이렇게 우리 토종 곡식, 앉은뱅이 밀을 여름이 가기 전 식탁에 한 번 불러보자.

권우중 CJ푸드빌 한식총괄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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