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가 10구단까지 창단된 지금, 고교야구 수(62개)는 너무 적은 편이다. 인구 비례를 따져 봐도 그렇고, 상급 무대의 원활한 선수 수급을 위해서는 최소 100개 정도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가 야구팀 창단을 꺼리는 이유는 주말리그로 전환하면서 봉황대기와 같은 단기전이 사라지거나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다. 과거 고교야구는 단체 응원을 통해 애교심을 고취하고 전 동문이 어우러지는 축제의 장이었다. 고교야구 선수들 입장에서도 주말리그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모든 스포츠는 엘리트와 동호인 리그로 나뉜다. 국내 고교야구는 엘리트 스포츠다. 대학에 진학하고 프로야구에 입단하기 위해서는 야구를 직업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공부하는 학생 선수를 육성한다는 주말리그의 취지는 공감하나 우리 나라 여건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고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 무척 반가웠다. 필자가 고교생이던 1970년대 초반만 해도 다들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필자는 경북고를 1974년에 졸업했다) 그러다 보니 서울 대회에 한번 출전하려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전교생이 모금 운동을 하거나 동문회에 손을 벌려야 했다. 봉황대기는 일본고교야구 최고의 축전인 고시엔에 비유되는 한국고교야구 최고 대회지만 일본과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은 결승전이 아니면 학교 관계자들과 선수 가족들만이 스탠드를 지키지만 일본의 경우 거의 매 경기 만원 관중이 들어찬다.
우리도 일본과 같은 시절이 있었다.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인 1970년대만 해도 고교야구대회가 열리는 날 암표는 기본이었고, 표를 구하기 위해 동대문시장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장사진을 이뤘다.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그 시절에 기댈 곳은 고향밖에 없었다. 그래서 출신 지역 팀이 출전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야구장으로 달려갔다. 혼자 가기 섭섭하니 동문 선후배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야구장 동문회’를 만들었다. 이기면 이긴 대로, 지면 진대로 시원한 생맥주를 한잔 하며 뒤풀이를 즐겼다. 아마추어 야구가 프로의 젖줄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한 얘기다. 그러면서도 정작 고교야구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게 현실이며 주말리그 도입으로 더 위축된 게 사실이다.
지역예선 없는 유일한 야구 전국대회 봉황대기 부활을 계기로 고교야구에 다시 한번 70년대의 함성이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서정환 전 KIAㆍ삼성 감독,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운영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