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ㆍ중독ㆍ질환은 자살 위험인자
정신 질환자가 병원 치료 비율 15%
체계적인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 갖춰야
우리는 최근 걸출한 희극배우를 잃었다. 로빈 윌리엄스, 그는 다양한 정체성의 영화 속 인물로 다가와 항상 친근하고 아름다운 미소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던 배우다. 그가 맡은 역할은 약자를 돕거나, 그 자신이 어딘가 모자라는 약점이 있는 인물로 우리가 다가가기에 경계가 없고 친숙하며 날 선 세상과 상처받은 영혼들을 어루만지는 배역을 주로 맡았기에 그의 죽음은 더욱 황망하고 슬프다. 그의 미소 뒤에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 그리고 최근의 파킨슨병까지 어려운 정신장애와 만성 신체질환이 있었다니 ‘그가 과연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연민이 솟구친다. 우울증과 중독, 그리고 만성 신체질환 모두가 가장 잘 알려진 자살의 위험인자들이다. 결국 그는 내면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것을 깊이 있는 연기로 승화하여 배우로서 한 획을 긋다가 나이가 들어 심약해지고 자신을 둘러 싼 주변 현실이 악화되고 신체질환까지 겹치자 병이 재발하고 이어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예술가나 연예인뿐만이 아니다. 잘 알려진 유명인 중에는 정신질환으로 고생한 인사들이 꽤 많다. 2차 세계대전을 불굴의 투지로 이겨낸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도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오죽하면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검은 개’ 한 마리가 살고 있다고 자조적인 말을 남겼을 정도다.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고 노예해방을 일궈낸 위대한 대통령 링컨도 예외가 아니다. 그의 증상을 다시 정신의학적으로 검토해보면 그는 경증의 우울감을 경험하는 수준 이상으로, 그의 병은 양극성정동장애(조울증)가 강력하게 의심될 정도다.
그러나 외국의 유명인사들은 정신질환이나 대중에게 알리기 어려운 질병들에 대해 용감하게 자신이 그 병을 앓고 있다고 커밍아웃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들은 사재를 털어 재단을 만들고 후원을 조직하여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고 관련된 연구를 지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런 질환이 관심을 끄는 경우는 환자가 관련된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때다.
최근 군대에서 끔찍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안전과 관련된 사회적 관심이 많아졌다. 그래서 최근 경찰청에서는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경찰이 되는 것을 막고자 경찰에 지원한 사람들이 과거에 정신과를 찾아 진료한 적이 있는 지를 관계기관의 협조를 얻어 자료와 정보를 살펴보겠다고 한다. 심각한 정신병리를 보이는 사람이 경찰 업무를 수행해서는 안 된다. 아니,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경찰의 이 정책은 정신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에게 이득을 주고 치료받은 적이 있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는 잘못된 정책이다. 무엇보다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차별하고 인권을 경시한 정책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는 비율은 15%정도로 너무 낮은 수준이다. 그러므로 정신질환을 치료했던 과거력을 뒤져도 다수의 환자들은 걸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치료를 잘 받고 회복된 사람들에게 자괴감을 안길 뿐이다. 그나마 치료를 받으러 오려는 환자들도 치료 후에 평생 낙인이 찍힐까봐 정신과 치료를 꺼릴 것이다. 이미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마음의 상처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정말 이후에 사회생활에서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는 성격장애 환자들은 한두 번의 면담이나 선별검사로 전문가들도 파악하기 어렵다. 선발 후에 업무를 잘 하다가 발병하는 사람들은 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관리 체계를 만들어 과거에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 왔는지를 상식적인 수준에서 심도 있게 찬찬히 면접을 하면 정신과적 문제는 거의 선별이 된다. 그래도 불안하면 최종 합격 전에 전문가와 한 번 더 면담을 하고 최종 결정을 하면 된다. 이후가 더 중요하다. 격무에 시달리는 일반 경찰들의 스트레스 관리와 심리 상담을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
좋은 인재를 선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로빈 윌리엄스 같은 대배우도 위대한 정치인인 처칠과 링컨도 걸릴 수 있는 정신질환의 과거 치료 경력을 확인하는 일보다 우선이다. 또한 개인의 사적인 비밀과 정보 그리고 양심을 지켜주는 것이 공권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선완 국제성모병원 기획조정실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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