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로케(Roque, 라틴어로는 로쿠스)는 14세기 흑사병 시대에 순례에 나서 수많은 환자를 돌봤다는 프랑스 태생의 가톨릭 성인이다. 어느 날 그가 병에 걸렸을 땐 곁에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숨져가던 그는 천사의 보살핌, 또 매일 빵 한 덩이를 가져다 준 개의 도움으로 기력을 회복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는 여행자와 병자, 그리고 개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의 오랜 식민지였던 볼리비아 시민들에게 8월 16일(현지 시각)은 성 로케 축일이다. 그리고 ‘개의 날(Dog Day)’이다. 시민들은 이날 축일 미사에 반려견을 동반하는데 개에게 특별한 치장을 해주는 이들도 있다. 성자에게 바치는 감사의 기도를 개에게 쏟는 정성과 사랑으로 표현하는 셈이다.
사실 전설을 따르자면 성인의 헌신은 인간을 향한 거였다. 그가 개의 수호성인이 아니라 개가 그의 수호존재였다. 그러니 볼리비아의 시민들은 성 로케를 매개로, 그들이 매일 개에게서 얻는 ‘빵 한 덩이’의 의미를 신 앞에서 환기한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약속이나 한 듯 근엄하게 눈 감은 강아지들, 영성체 기다리는 신자처럼 숫접게 치뜬 소녀의 눈망울이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볼리비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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