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반성 촉구 속 표현 한층 완화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내년 수교 50주년을 맞아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대일 메시지의 대부분을 과거사에 초점을 맞춰 일본을 강하게 몰아세웠던 지난해 경축사와 확연히 달라 대일기조 변화까지 감지된다. 박 대통령은 한일간 최대 현안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면서 여전히 과거사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는 했으나, 이미 시선은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로 향하고 있었다.
경축사에서 일본을 언급한 부분은 시작부터 끝까지 2015년의 의미가 부각됐다. ‘국교정상화 50주년’ ‘새로운 50주년’ ‘한일수교 50주년’ ‘새로운 미래를 향해 출발하는 원년’ 등 무려 4차례나 거론됐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의 경우 도입부에서 “과거사 문제로 한일관계가 어둡다”며 기대감을 저버렸던 것과 대비된다.
박 대통령은 특히 지난해 경축사에서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는 고려 말 대학자 이암 선생의 글귀를 인용해 “만약 영혼에 상처를 주고 신체의 일부를 떼어가려고 한다면 어떤 나라, 어떤 국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극적인 비유를 통해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려는 의도가 강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그와 같은 거친 표현이 상당부분 누그러졌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과거 직시’는 ‘상처 치유’로, 일본 정치인들의 ‘책임 있는 조치’는 ‘지혜와 결단’으로 톤이 낮아졌다. 일본의 역사도발에 자극적인 언사로 맞서기 보다는 양국관계를 발전적으로 끌고 가려는 고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정부의 이 같은 대일기조 변화는 지난 9일 미얀마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일부 감지됐다. 당시 윤병세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은 일본 산케이신문의 박 대통령 보도 문제로 잠시 냉랭해졌지만 전체적으로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회담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 소식통은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주제로 두 장관이 상당히 긍정적인 태도로 대화에 임했다”며 “경색된 양국관계를 감안하면 다소 의외일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은 이날 한중일 중심의 ‘원자력안전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하며 자신의 대선 공약인 동북아협력구상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지난해 경축사에서 한중일 3국의 역사ㆍ영토문제 갈등을 지적하면서도 원론적 차원의 동북아협력 필요성을 거론한 데 그친 것에 비하면 한층 구체적이다.
다만 무력충돌을 불사하는 중일 양국 사이에 한국이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는데다, 박근혜정부 들어 아직 한중일 3국간 양자나 다자 정상회담을 기약할 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악화된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경축사가 동북아 정세의 선순환에 기여할 수 있을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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