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제69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남북이 실천 가능한 사업부터 행동으로 옮겨 서로의 장단점을 융합해 나가자고 북측에 제의했다. 박 대통령은 이를 위해 남과 북이 만나 소통하고 이해를 넓혀갈 ‘작은 통로’가 필요하다며 3개의 협력 통로를 제시했다. 한반도 생태계를 연결하고 복원하기 위한 환경협력의 통로, 생활환경 및 민생 인프라 협력을 위한 민생 통로, 남북이 문화유산을 함께 발굴ㆍ보존하고 내년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공동 문화사업을 펼칠 문화의 통로가 그것이다.
실천 가능한 작은 협력사업에서부터 신뢰를 쌓아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그러나 과거 정부에서 시작됐다가 5ㆍ24 조치로 중단된 사업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수준으로 획기적 내용은 아니다. 이번 경축사에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열 선제적 제안이 담기길 촉구해온 우리로서는 실망이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이날 “우리 정부가 제안한 남북고위급 접촉에 응해서 새로운 한반도를 위한 건설적 대화의 계기를 만들기 바란다”고 북측에 촉구했지만 공허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통일준비위원회 출범에 이은 남북고위급 접촉 제안, 한반도 화해와 평화를 강조해온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내달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의 선수단 및 응원단 참가 등을 계기로 경색된 남북관계에 국면 전환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국민들 사이에 높다. 박 대통령의 평범한 경축사 내용은 국민들의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북측은 광복절 전날인 14일 단거리 발사체 5기를 발사하는 등 긴장조성 행위를 계속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천명하는 조평통 성명을 발표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 5주기를 맞아 화환 전달 뜻을 밝히기도 했다. 강온 양면 제스처가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우리 정부의 정책변환 의지를 타진해보려는 속셈일 것이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북한의 진정성 있는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기존입장을 재천명한 셈이 됐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긴장조성 행위를 중단하고 변화의 진정성을 보이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에 중요한 전제다. 하지만 이 전제에만 매달리다 남북관계 돌파구를 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북측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두고 봐야겠지만, 5ㆍ24 조치 등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자세로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고 본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일본이 과거를 직시하려는 용기와 상대방의 아픔을 배려하는 자세가 없으면 미래로 가는 신뢰를 쌓기 어렵다면서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지혜와 결단을 촉구했다. 지난해에 비해 수위를 조절하며 한일관계의 개선을 모색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평가다. 하지만 취임 2년 차 중반이 넘도록 양국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 그 동안 박 대통령은 내치의 실점을 외치의 득점으로 메워왔지만 점차 남북관계와 외교 성적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이 높아지고 있음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