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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울음소리로 멸종된 존재를 더듬다

입력
2014.08.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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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 핵전쟁으로 인해 지구는 폐허가 되었고 인류는 인간과 늑대(짐승)의 몸이 공존된 가상의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에서 자해 공갈단의 우두머리로 몸을 팔고 새끼들을 팔아 연명해가는 엄마늑대와 아들늑대 이야기다. 생계를 걱정하며 어떻게 먹고 살지 궁구하는 이들 모자의 모습은 사실 가난한 소시민의 우리네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 속에 늑대의 야수성은 울음소리로 대변되며 생존의 위기는 우리의 삶의 문제를 조금 다른 ‘늑대 인간’의 삶으로 치환시켜 놓은 것이다. 울음소리(野聲)를 통해 본래적 존재를 회복하고자 하는 모자(母子)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가늠할 수 있다.

황갈색의 어둡고 음침한 늑대의 터전이 무대 전면을 차지하고, 동물을 박제하여 먹고 사는 늙은 어미가 혼자 머무르는 이곳에 두 팔 없는 아들 늑대가 등장한다. 임신 중에 살모사가 삐져나와 아들의 팔다리를 먹어 치웠다는 뜬금없이 뱉는 어미의 말은 단순히 진실의 측면이 아니라 아들의 장애에 대한 풀리지 않는 현재진행형의 물음을 던진다. ‘여긴, 참 우아한 생태계군.’

이 연극은 갈수록 ‘희박’해지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우리 주변인들, 소외당한 사람들의 생존에 관한 극이다. 그것을 형상화한 것이 두 팔이 잘린 아들 늑대이다. 결핍과 가난, 소수, 소외층을 상징하는 사람들. 인간이 각각 하나의 우주라고 한다면 그들은 핵전쟁 이후 이 사회에 ‘불량품’으로 남는다. 늑대인지 사람인지 모호한 주인공들은 사람과 짐승의 경계에서 ‘병신’으로 살아간다.

결국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는 존재와 삶의 근본적인 ‘부조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오로지 연극만이 줄 수 있는 재미와 방법으로 세상의 불구성을 표현한다. 부조화, 소통불가, 혼란, 괴리 등 우리의 삶에 산재해 있고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악순환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물론 있는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라는 힌트를 갖고 연극을 본다면 한층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연극은 쓸쓸하면서도 재밌다. “아버지들은 박제에 불과해. 위엄만 있을 뿐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 “울음소리는 박제가 될 수 없어.”

아들 늑대는 울음소리(우주)를 찾아 떠돌아다닌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한 오이디푸스 설화를 뒤집어서 보여주는 화법을 줄곧 유지해가며 작품의 상징성에 관객이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불구적인 인간들에 대한 우화극이며 사이보그 경찰들과 짐승들의 공존은 독특한 블랙유머를 형성한다. 연극 안에서 제도를 상징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이다. 우리는 그 제도 안에서 박제되어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이 오로지 본연의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울음소리 밖에 없다. 그래서 이 극에서 청각적인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 있는 연민은 아이러니한 생의 구조에 깊이 천착한다. 끝도 없이 애증이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삶은 연민을 품지 않고 바라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때문에 울음소리는 아들의 멸종을 거부하는 의지이면서 생을 받아들이는 연민이고 자신의 두고 온 팔을 찾는 행위로 보여진다. 어머니 역시 표면적으로는 생계를 위해 덫에 걸린 짐승들을 박제로 만드는 박제사(울음소리를 파내는 행위)를 하고 있지만 자신이 놓은 덫에 연민의 구조가 촘촘하게 박혀 있음을 끝끝내 부정하면서도 서서히 인식해가는 인물이다.

아들은 울음소리 자체를 자신의 존재 증명으로 삼고 살아가다가 작품의 끝으로 갈수록 어머니와 울음소리가 같음을 인식하면서 주제는 확장되고 굴절된다. 실험적인 연극이 멸종해가는 시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부조리극이기에 더욱 반갑지만 조금 낯설 수도 있다. 정식공연은 10월 초에 동명의 희곡집 출간과 함께 오픈된다고 한다. 웃기는 것에 목을 맨 관객이 있다면 색다른 유머가 숨어 있는 이 연극을 권한다. 연극을 본 후 자꾸 늑대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김경주 시인ㆍ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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