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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 각시랑 살면 정말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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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 각시랑 살면 정말 행복할까?

입력
2014.08.1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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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 각시는 남성내면의 모성애를 표현한 것으로 자기희생과 소통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이뤄야 한다. 웅진 씽크하우스 제공
우렁이 각시는 남성내면의 모성애를 표현한 것으로 자기희생과 소통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이뤄야 한다. 웅진 씽크하우스 제공

“콩밭 팥밭 매면 뭐 해, 이 밭 일궈 누구랑 먹나?” “먹긴 먹긴 뉘랑 먹어, 알콩달콩 나랑 먹지.”옛날에 서른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노총각이 밭에서 일하다 신세한탄 노래를 부르자 우렁이가 화답을 한다. 깜짝 놀란 총각은 우렁이를 집으로 데려와 비단 헝겊에 싸서 장롱에 넣어뒀다.

예나 지금이나 우렁이 각시는 남자들의 로망이다. 고슬고슬 지은 쌀밥에 고기 넣어 끓인 국이 대접에 찰랑찰랑, 맛나게 무친 나물이랑 잘 구운 굴비까지 대접하고, 남자를 사로잡는 아름다운 외모에 어진 성품까지. 우렁이 각시와 결혼한 노총각은 너무 신나 종일 일을 해도 힘이 하나도 들지 않고 웃음만 해실헤실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장미꽃도 아닌 우렁이가 주인공이 됐을까. 정찬승 마음드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노총각이 우렁이 각시를 만난 곳이 논인데 물과 흙으로 이뤄진 논은 거대 모성의 상징”이라며 “결국 우렁이 각시는 남성들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모성의 발로”라고 했다. 대다수의 정신분석학자도 “우렁이는 늪에서 사는데, 늪은 여성성을 상징하는 장소”라고 말한다. 속살은 부드럽지만 껍데기가 딱딱하고 구멍이 작은 우렁이 생김새도 개화하지 않은 여성을 상징한다.

아직 때가 아니니, 조금만 참아 달라는 우렁이 각시의 말을 듣지 않고 총각은 서둘러 우렁이 아가씨와 결혼한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여성을 갖고 싶은 남성의 본능인 셈이다. 정 원장은 “사실 우리나라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의존심이 상당히 강하다”며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중에도 집에서는 엄마 품에 있는 아이처럼 모성애에 집착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결혼 전에는 세상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던 남자가 결혼 후 응석받이로 변신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정신분석학 차원에서 동화내용처럼 노총각이 원님에게 우렁이 각시를 빼앗겼다면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를 ‘아니마(anima)’라고 하는데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남성일수록 여성을 현실적으로 보지 않고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여성상에 의존하게 된다. 자신만의 여성상에 갇혀 무조건적인 사랑을 강요한 노총각에게 우렁이 각시의 마음은 이미 떠나 있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또 다른 설화내용처럼 노총각이 바둑 두기와 말 타고 강 건너기 시합에서 승리해 우렁이 각시와 행복하게 살게 됐다면 이는 미성숙 단계를 탈피해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자아를 형성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우렁이 각시. 우렁이 각시는 노총각이 주체가 돼 난관을 극복하게 만든다. 정 원장은 “아름답고 능력 있는 여성을 쟁취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상호 소통과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참다운 부부로 승화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최근 결혼에 대한 부담, 고용불안, 주택마련, 육아문제 등 정신?경제적 문제로 인해 결혼하지 않는 노총각, 노처녀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 모두 속으로 ‘우렁이 각시’ ‘우렁이 신랑’을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 건수는 11만5,300건으로 전년대비 1,000건(0.9%) 증가했다. 고르고 골라 우렁이 각시와 우렁이 신랑과 같은 사람과 결혼을 했을 텐데. 자기희생과 소통 없이 조건만 따지는 현실 때문에 ‘우렁이 각시’가 변질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김치중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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