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음식 과식하면 위암 걸려”
매운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위암에 걸린다는 말이 근거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캡사이신이 암세포를 공격하는 우리 몸의 아군인 자연살해(NK)세포 기능을 떨어뜨려 결국 위암을 비롯한 암 발생을 촉진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김헌식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교수팀은 캡사이신 자체가 발암물질은 아니지만 과다 섭취하면 NK세포의 세포질 과립방출 기능장애를 일으켜 암 발생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NK세포는 혈액 속에서 떠다니다 암세포를 만나면 암 세포막에 구멍을 낸 후 세포질과립을 분비해 암세포를 죽이는 항암면역세포다.
이번 연구는 영국 국제 과학기술 논문인용색인(SCI) 학술지 '칼시노제네시스' 최신 호에 실렸다.
연구진은 여러 암세포를 대상으로 캡사이신의 양을 10μM, 20μM, 50μM, 100μM(마이크로몰·100만분의 1몰) 등으로 각각 다르게 투여 후 NK세포 활성도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위암세포 AGS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NK세포 활성도(세포질 과립 방출 정도)가 캡사이신 투여 전 15%에서 고용량 50μM을 투여 후 10%로 33% 감소했다.
NK세포 기능을 측정할 때 가장 많이 쓰는 혈액암세포 221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NK세포 활성도가 캡사이신 투여 전 32%에서 50μM 투여 후 16%, 100μM 투여 후 4%로 크게 떨어졌다.
저용량 캡사이신 10μM, 20μM을 투여했을 때에는 NK세포 활성도가 28%, 27%로 투여 전 32%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캡사이신 자체가 암을 일으키진 않지만 지나치게 많은 양을 먹으면 암세포를 공격하는 항암면역세포 기능을 떨어뜨려 암 발생을 간접적으로 돕게 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캡사이신에 의한 NK세포 활성 억제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없었다. 김 교수는 "NK세포 활성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고용량 캡사이신에 의한 활성억제는 공통적으로 나타났다"며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캡사이신을 고용량으로 섭취할 가능성이 커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캡사이신은 체내 수용체인 TRPV1 단백질과 결합해 항암 활성을 나타낸다. 하지만 고용량 캡사이신은 TRPV1과 결합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NK세포 기능 장애를 유도했다.
상대적으로 TRPV1이 부족하거나 민감성이 떨어지는 30, 40대 이후 성인이 캡사이신을 다량으로 섭취하면 암 발생이 촉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드러난 것이다.
캡사이신은 암 억제나 진통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왔지만 자연살해세포 기능장애를 일으킨다는 연구는 없었다. 이번 연구는 암세포에만 국한됐던 캡사이신 연구를 항암면역세포로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교수는 "캡사이신에는 항암과 통증완화 등 유용한 생리 활성성분이 많은 만큼 적당하게 먹으면 좋지만 지나치게 매운 고추는 피하고 많은 양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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