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스타이그 지음ㆍ조은수 옮김
비룡소ㆍ50쪽ㆍ8,500원
2001년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슈렉’을 봤을 때 공주와 왕자가 나오는 느끼한 고전동화를 비트는 상상력에 박수를 보냈다. 그 발칙하고 급진적인 결말! 낮에는 예쁜 인간 여자이고 밤에는 초록색 뚱뚱한 괴물이 되는 피오나 공주가 마법이 풀리자 낮에도 괴물인 채 있더라는, 그래서 초록색 남자 괴물 슈렉과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결말을 응원했다. 세상이 바뀌니 이런 결말도 유쾌하게 받아들여지게 됐다. 만약 ‘레이디호크’(1985년 나온 할리우드 로맨스 판타지)의 미셸 파이퍼가 마법이 풀린 후 그냥 독수리가 된다는 결말이었다면 당시 관객은 팝콘을 집어 던졌을 것이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슈렉’의 원작인 그림책 ‘슈렉!’을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뭐야, 그림책에 비하면 애니메이션은 귀엽게 순화된 팬시한 상품이잖아.’
도입부부터 물건이다. “슈렉의 엄마는 못생겼어. 슈렉의 아빠도 못생겼지. 하지만 슈렉은 그 둘을 합친 것보다도 더 못생겼어. 어느 날 슈렉의 엄마 아빠는 슈렉을 발로 뻥 차서 내보냈어. 그래서 슈렉은 자기가 태어난 검은 늪을 떠나게 되었지.” 슈렉은 입과 눈에서 불을 뿜고 번개도 삼켜버리며 뱀에 물리면 뱀이 독에 감염돼 뻗어버리게 하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혹으로 뒤덮인 초록 얼굴과 붉은색 눈, 듬성듬성하고 뾰족한 이빨 등 추한 정도를 넘어 역겹다. 얼굴 위에 떨어진 빗방울이 지글지글 끓는 그림을 보고 있으면 기가 막힌다(애니메이션의 슈렉은 그림책의 슈렉에 비하면 괴물이라 부를 수 없을 지경이다).
자기정체성도 확고하다. “슈렉이 가는 곳마다 살아있는 것들은 뭐든지 달아났어, 슈렉은 자기가 그렇게 메스꺼운 존재라는 게 얼마나 기분 좋았는지 몰라.” 인간 어린이들이 꽃밭에서 조잘대며 자신에게 뽀뽀하려는 꿈을 꾸고 나서는 중얼댄다. “끔찍한 꿈이었어.”
엽기 발랄하지만 예쁜 피오나 공주는 없다. 마녀는 슈렉에게 너보다 못생긴 공주랑 결혼할 거라고 예언한다. 그 말을 듣고 슈렉은 이렇게 외친다. “공주라고! 자, 갑니다요!” 공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추하다. “오, 소름 끼치는 그대! 푸른 얼굴과 붉은 눈동자, 시뻘건 다래끼, 나를 사로잡네.” 둘은 서로를 꼭 껴안았다. “불과 연기처럼 이 두 사람은 하나”였던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슈렉이 피오나 공주가 아닌 이 공주를 봤다면 과연 사랑에 빠졌을까. 드림웍스는 관객에게 거부감을 덜 주기 위해서 피오나 공주를 낮에는 예쁜 여자로 각색했다.
‘슈렉!’은 애니메이션 ‘슈렉’보다 과격해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역겹고 추한 괴물 슈렉을 보면서 자꾸 입꼬리가 올라간다.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한 문장은 무서움을 상쇄시킨다. 인간의 마음 속엔 세상이 정해놓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동시에 추함과 더러움에 대한 모순된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 개구쟁이 아이들은 후자의 욕구에 더 충실하다. 아이들은 심술궂고 고약하고 더러운 캐릭터를 좋아한다. 보수적인 학부모들은 싫어하겠지만 이 독창적으로 황당무계한 그림책은 바로 그 점 때문에 할리우드에 영감을 주었다.
깔깔대고 웃다 보면 마음 속에 침전물이 가라앉는다. 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추한 것을 두려워할까. 사회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꾸미고 살아야 하는 걸까. 슈렉과 공주는 보자마자 반한다. 남들은 싫어해도 그들만의 기준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슈렉!’의 마지막 문장은 외모가 추한 사람,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이 시대 마이너리티들에게 윌리엄 스타이그가 보내는 응원과 축복의 메시지 같다. “슈렉과 공주는 최대한 빨리 서둘러 결혼했지. 그리고 영원히 무시무시하게 살았대. 앞길을 막아서는 것은 뭐든지 겁주어 쫓아버리면서 말이야.”
김소연기자 au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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