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남한에 왔지만 노숙하며 절도
이칠수 경위 정성으로 집행유예 받고
김남천 대표가 기능공으로 정식 채용
“피의자의 신변보호관과 멘토가 누구인지 손 들어보세요. 범죄행위로는 실형을 받아야 하나 특수한 상황과 멘토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이번에 한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합니다.”
지난달 24일 서울 광진구 서울동부지법. 탈북 청소년 박문수(가명ㆍ19)군의 절도사건 선고 공판이 열렸다. 박군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박군을 자식 같이 품은 담당 경찰관 이칠수(59) 광진경찰서 경위와 이 경위의 부탁으로 박군의 취업을 허락한 서울 성수동 소재 정밀기계회사 대표 김남천(58)씨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박군은 10대 시절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숨지고 아버지마저 잇달아 세상을 떠나면서 시장 등을 전전하는 ‘꽃제비’로 살았다. 중국에 가면 먹을 것이 많다는 말에 2010년 북한을 탈출했다. 숨어 지내던 폐가에서 우연히 한국인 목사를 만나 2012년 초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에서의 삶도 녹록하지 않았다. 탈북 청소년 교육시설의 동료들은 북한이탈 청소년들이 과거 폐결핵을 앓았다는 이유로 밥도 같이 먹으려 하지 않았다. 교육시설 기숙사를 뛰쳐나온 박군은 올 초 서울 광진구 아차산 인근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생활을 했다. 먹고 살기가 막막하자 박군은 기숙사에 몰래 들어가 동료 학생의 노트북을 훔치고 식당에서 남이 놓고 간 지갑을 훔쳤다.
탈북자 신변보호 담당 경찰관으로 인연을 맺었던 이 경위는 그런 박군을 내치지 않았다. 박군이 거리에 나앉았을 때 동사무소와 구청을 오가며 긴급구호자금을 얻어내고, 범죄를 저질렀을 때 합의서를 받기 위해 직접 뛰었다. “한국에 온 만큼 우리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통일이 되면 훌륭한 자원으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경위의 도움으로 박군은 김 대표의 회사에 취업도 했다. 기계 만드는 기술을 배우면서 월급도 130만원 받을 수 있는 자리다. 김 대표는 “직원이 열댓 명인 작은 회사지만 도울 수 있다는 생각해 취업시키게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공장 인근에 박군이 머물 고시원을 알아봐주고, 은행에 함께 가 월급 통장을 만들어줬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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