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성실의 원칙이 깨지면 협상은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야당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 파기는 여의도 정치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초반부터 신뢰의 축이 무너진 가운데 오늘로 100일을 맞는 이완구ㆍ박영선 원내대표 체제가 남은 1년 9개월 동안 협상 파트너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심히 우려된다. 그러나 협상이 깨지면 남는 건 전쟁이라는 오랜 격언도 여야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정치의 파국이 초래할 결과를 여야 모두 잘 알 것이다. 강경파에 휘둘린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지도력 부재에 있든, 박 대표의 독단적 결정에 있든 야당의 합의 파기 원인과 잘잘못을 따지는 게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게 당면 과제다. 야당의 합의 파기와 재협상 요구 이후 협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 대표는 여당 수뇌부가 자기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하고, 이 대표는 야당에 잘못된 신호를 줄까 두려워 전화하기가 어렵다는 말도 한다. 이대로라면 19일로 끝나는 이번 임시국회 처리도 난망이다.
사실 합의 파기라고 하지만 야당이 전면적인 틀을 깨자고 나선 것도 아니다. 특검 추천을 다시 야당이나 진상조사위에 맡겨달라는 것도 아니고 상설특검 규정을 따르자는 데 이의가 없다. 다만 법무차관과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협회장 등 7인으로 구성되는 특검 추천위에서 국회 몫인 4명 가운데 야당 몫을 더 늘려 달라는 요구다. 당초 협상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특검의 야당 추천을 언급했던 김무성 대표의 약속을 보더라도 감안할 만 하다. 물론 여야가 특검 추천과 진상조사위 구성에서 각각 자신의 입장을 관철한 기존 합의의 틀에서 보자면 새누리당이 불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 추천의 몫을 더 갖든지 간에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특검의 성격은 누구도 훼손할 수 없다.
특검법상 과반수 찬성으로 특검 추천이 이뤄지기는 하지만 편향적이거나 부적절한 인사를 배제하는 방식에 대한 합의만 있다면 여야나 유족이 만족할만한 특검을 추천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리더십이 흔들리는 야당을 견인해 나라가 돌아가게 만드는 것도 국정운영을 맡고 있는 여당의 책임이다. 더욱이 청와대 등 여권의 자세로 볼 때 세월호 진상조사와 책임추궁이 통과의례에 그칠지 모른다는 유족의 우려도 감안한다면 여당이 유연한 자세나 합리적 대안을 내놓지 못할 이유가 없다. 파국을 막을 여당의 정치력이 요구된다.
박 대표가 내놓은 해법이 당내에서 또다시 번복될 우려가 없느냐는 것도 문제다. 박 대표가 여당에 주장한 ‘균형적인 불만족’은 진상조사위의 수사권 기소권을 요구하는 당내 강경파나 유족의 입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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