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의존’이라는 개념이 있다. ‘한번 만든 제도는 무슨 일이 생겨도 쉽게 바뀌지 않고 자체로서 계속 지속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의미다. 합리주의ㆍ기능주의 관점에서 보면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에 사회는 합리적 차원에서 반응하고, 기존제도 개혁이나 새로운 제도 도입을 시도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문제 해결 자체보다 기존 조직이나 제도 유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기도 한다. 또 적절한 제도라 할지라도 뒤늦게 도입하기도 한다. 게다가 시끄럽던 논쟁이 잦아들면 아예 제도 변화 자체가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이렇게 기존 제도는 자체로서 지속성을 가지면서 확대돼 간다. 이런 사례 중 하나를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서비스는 속성상 서비스를 받는 사람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가장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는다. 같은 구직자라 할지라도 학교를 막 졸업한 청년, 경력단절 여성, 한부모가족 가장, 고령실업자 등은 매우 다르면서도 복합적인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긴급지원을 원하는 가족의 경우에도 상황에 따라 단순한 생계지원부터 전문적 상담 및 지속적 동행·개입까지 다양하며 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면 이런 상황을 누가 판단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면 되는가? 각종 복지관과 센터, 지자체 등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건강가정사, 각종 상담사와 지도사, 그리고 사회복지 전담공무원 등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전문가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모든 제도는 중앙정치 중심 경로의존성을 보여 왔다. 그 결과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에서도 지자체 조직과 규모 확대보다는 중앙정부 조직 확대를 지속하는 경로의존성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사회서비스 정책이 지역사회 문제에 신속하게 대응하기보다 중앙정부 조직 확대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보는 모습 중 하나가 산하기관 중심 ‘콜센터 복지’의 확대다. 중앙부처 산하에 ‘xx원’을 만들어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콜센터’ 상담인원을 늘리면 모양 자체는 매우 근사해 보인다. 수요자 욕구에 맞는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고 서비스를 연결한다는 모양새다. 그런데 실제 그럴까?
효율적 사회서비스 제공은 전화를 돌리든, 인터넷으로 찾든, 직접 찾아오든 서비스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적극적 태도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언급한대로 전화로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복합적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문제 상황에 처한 사람은 홈페이지를 구축한 중앙부처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들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차근차근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찾아갈 능력’이 없다. 아무리 배운 사람이라도 문제 상황에 처하면 그렇게 되기 쉽다. 그래서 복지국가들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직접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생활 근거지 소재 복지관과 센터, 그리고 지자체 중심 사회서비스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정책의 큰 방향만 정하고, 산하에 이런저런 기관도 가능하면 만들지 않고, 지자체가 직접 서비스 제공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에만 주력하는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됐든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 큰소리치지만 사실 인구 대비 공무원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이하인 것이 우리 실정이다. 공무원 수는 늘려야 한다. 그러나 방향을 대국민 서비스를 직접 제공할 수 있는 지자체 중심으로 잡아야 한다. 일상에서 국가와 사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우선 중요한 것은 전화나 인터넷이 아니라 직접 잡아주는 손길이다.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처한 문제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날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전문가의 손길이다. 지자체 중심 사회서비스 체계를 확대하는데 필요하다면 중앙부처나 산하 기관 규모는 가능한 한 축소를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남는 인력은 지자체로 이동해서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력으로 재배치돼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서비스 전달체계 관련 공공기관 통폐합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이제는 중앙부처와 산하기관 중심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나 우리의 일상으로 내려간 사회서비스 전달체계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때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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