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ening and Speaking
숫자에도 허구가 있다. 숫자나 통계는 조작이 더 쉽다는 말도 있다. 정확성을 기하고 과학적 방법을 동원한 분야에서도 얼마든 허구가 있고 객관보다는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다분하다. 과학자들이 논문에서 자주 사용하는 어구나 표현에도 주관적이고 비사실적인 묘사가 수두룩하다. 예를 들면 ‘고순도’를 표현하면서 ‘Very high purity’ ‘Super high purity’라고 표현하는데 그 기준이 모호하다. 논문 말미에 ‘It is hope that this work will stimulate further work in the field.’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자신 말고 어느 학자가 관련 연구를 이어갈 것이라는 것은 자신만의 착각이고 보장도 되지 않는 언급이다. ‘이론과 실제에서 매우 중요한’이라고 말하면서 ‘Of great theoretical and practical importance’라고 표현하는 것도 근거가 없는 말이고 자신만의 표현이다.
최근 당국이 어떤 시신에 대해 언급하면서 ‘DNA 100%일치’ ‘100% 확신’이라고 강변했을 때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모르는 두 사람의 DNA는 이미 99% 일치한다고 해도 100%가 아니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억지로 강변했기 때문이다. 전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두둔하면서 참모들이 ‘주어가 없지 않느냐’고 말한 것처럼 뻔한 얘기를 바꿔 말하는 것은 속임수에 불과하고 우스꽝스런 일이다.
학자나 엔지니어들은 그들의 연구 방법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기 때문에 그들의 논문 표현에는 신경을 덜 쓴다. 논문에 ‘I think~’ 같은 주관적 표현을 쓸 수 없다는 규정을 알고 있기에 ‘It is suggested that~’이나 ‘It may be believed that~’ 등을 즐겨 쓴다. 알고 보면 ‘I think’를 말만 바꾼 것(paraphrased, rephrased, reworded)에 불과하다. 결국 과학자의 논문에도 ‘I think’같은 비과학적 표현이 많은 셈이다. 논문에서 ‘It might be argued that~’라는 어구가 흔하다. ‘~를 논할 수 있겠으나’의 뜻인데 행위자 주어가 보이지 않아 누가 논한다는 것인지 불분명해 보인다. ‘I have such a good answer to this question that I’ll raise it.’라고 말하고 싶으면서도 주관적 주어 I를 빼기 위한 무책임한 표현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며 ‘The reason is, of course, obvious.’라고 표현하는 것 역시 실제로는 ‘I was not the first to think of it, but I think I got it independently.’의 뜻에 불과하다. 모름지기 과학적 표현은 언어마저 과학적 표현을 써야 타당성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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