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원하는 대학 진학땐 운동 약속
연대 음대 입학하자마자 동아리 가입
현재 국내 유일 女대표팀 주장 맡아
세계 랭킹 38개국 중 24위 이지만 4년 뒤 올림픽에서 기적 만들고 싶어
피아노 건반 대신 아이스하키 스틱을 잡았다. 빙판 위에서 거칠게 몸을 부딪치는 아이스하키의 격렬함을 잊지 못해서다. 하지만 아이스하키를 즐긴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뿐이었다. 피아니스트의 길을 원하는 부모의 뜻에 따라 스틱을 놓고 피아노를 쳤다.
피아니스트에서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변신한 한수진(27ㆍ사진) 얘기다. 서울예고를 졸업한 그는 대학 입시를 위해 피아노 레슨을 받던 중 시간을 내 목동 아이스링크를 찾았다. 남자고교 팀들의 경기를 보면서 다시 아이스하키를 하고 싶은 본능이 꿈틀거렸다. 결국 부모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면 아이스하키를 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연세대 음대에 진학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바로 교내 아이스하키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리고 2007년 대표팀 선발전을 통해 태극마크를 달았고, 지난해 9월부터 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다.
한수진은 아이스하키 불모지에서 ‘빙판 위의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꿈꾼다. 국내에 정식 팀으로 운영되는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국가대표팀이 유일하다. 때문에 대표팀 선수들은 생계와 학업을 뒤로 미룬 채 훈련에 매진한다. 수입은 하루에 4만원씩 나오는 훈련 수당이 전부다. 이 뿐만이 아니다. 훈련일은 240일인 반면 일년에 소화하는 경기는 세계선수권대회를 포함해 8경기 남짓이다. 태릉선수촌 합숙도 세계선수권대회 한 달 전부터 가능하다. 평소에는 집에서 출퇴근을 해야 한다.
한수진은 2014 여자 아이스하키 서머리그가 열리는 서울 안암동 고려대 인근의 한 카페에서 가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훈련과 실전은 엄연히 다르다”며 “많이 뛰고 싶은데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2011년 일본 유학 시절 친분을 쌓은 일본 친구가 경기를 많이 뛰기 위해 스웨덴에 갔습니다. 나도 뛸 곳을 알아보고 있는데 아직 큰 성과는 없습니다.”
그나마 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여자 아이스하키 활성화를 위해 2년 전부터 개최하고 있는 서머리그 덕분에 실전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덜고 있다.
한수진은 지난 4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이번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집이 부천인 그는 매일 오후 7시에 시작해 10시 정도에 끝나는 경기 일정 탓에 주로 팀 동료의 집이나 찜질방에서 잠을 청한다.
열악한 환경에도 한수진은 미소를 잃지 않는다. 4년 뒤 이룰 꿈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다. 여자 대표팀은 지난해 세계선수권 디비전2 그룹B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올해 세계선수권 디비전2 그룹A 3위까지 뛰어 올랐다. 대표팀의 세계 랭킹은 38개국 중 24위다. 8개 팀만 나갈 수 있는 올림픽은 꿈의 무대지만 다음 대회가 국내에서 열리는 만큼 출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대표팀 실력이 점점 늘고 있고, 훈련 환경도 지난해 1월부터 좋아졌습니다. 일본이 올해 소치올림픽에 나가 돌풍을 일으킨 것처럼 우리도 기적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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