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온 거대한 소용돌이와 ‘해리포터와 불의 잔’ 속 용이 내뿜은 불길처럼 스크린에서 불과 물 같은 유체 움직임의 사실적 묘사가 가능해진 건 스탠리 오셔 미국 LA캘리포니아대 교수 덕분이다. 그는 13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세계수학자대회에서 수학 이외 분야에 큰 공헌을 한 수학자에게 주는 가우스상을 받았다.
물이나 기름 같은 유체를 진짜처럼 구현하기란 아무리 컴퓨터 성능이 좋아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오셔 교수는 유체의 물리적 움직임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 수학식을 만들어냈다. 이 식을 실제로 ‘캐리비안의 해적’에 응용한 그의 제자 론 페드큐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아카데미 특수효과상을 받았다. 오셔 교수의 수학식은 지진의 진원 확인, 종양의 크기 변화, 컴퓨터 칩 설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또 오셔 교수가 설립한 회사 ‘코그니테크’는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의 재판과정에서 트럭 운전사를 무차별하게 폭행한 범인을 찾아내기도 했다. 불규칙한 공기 흐름을 기술할 수 있는 수학식을 개발해 흔들린 영상을 보정하는데 응용한 덕분이다. 오셔 교수는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자신을 “컴퓨터가 노래할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작곡하는 사람”이라고 재치 있게 소개했다.
이번 대회에서 발표된 수학상 5개 중 가장 상금이 많은 천(Chern)상은 필립 그리피스 미국 프린스턴고등연구원 명예교수에게 돌아갔다. 나이와 직업에 관계 없이 뛰어난 수학자에게 주는 이 상은 상금 50만달러의 절반을 수상자가 원하는 곳에 기부하는 게 원칙이다. 수상자의 모교나 소속 기관에게 행운이 돌아가는 게 보통이지만, 그리피스 교수는 ‘나눔으로 희망이 되는 축제: 후발국에 꿈과 희망을’이라는 이번 세계 수학자 대회의 주제와 걸맞게 아프리카수학연합회에 상금의 절반을 내놓아 화제를 모았다.
필즈상처럼 40세 미만의 수학자만 수상 자격이 있는 네반리나상은 정보과학 등 수학 관련 다른 학문의 업적에 수여된다. 이번 대회에서 네반리나상을 받은 인도 출신 수브하시 코트 미국 뉴욕대 교수는 적당한 시간 안에 근사치의 답을 찾는 게 불가능한 ‘유일게임’ 연구의 선구자로 꼽힌다. 필즈상 수상자들과 함께 가진 기자회견에서 코트 교수는 “유일게임에 따르면 해커들은 여러분의 은행계좌를 침범할 수 없다. 이걸 증명하는 게 내 일”이라고 소개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수학대중화에 기여한 수학자를 발굴하는 릴라바티상은 다른 상들과 달리 시상식이 폐막식 때 열린다. 올해 수상자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수학자 겸 과학 저널리스트 아드리안 파엔자. 그가 쓴 ‘수학아… 너, 거기 있니?’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방송과 책으로 전달하려는 그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수학은 교실에서 배우는 것처럼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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