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안 보았지만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소재로 만든 영화 ‘명량’이 간만에 터진 블록버스터가 맞긴 맞나보다. 일간지에 전면광고까지 실렸다. 투자배급사가 확실히 미는 것 같다. 광고카피도 영화를 본 사람들의 관람평에서 뽑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모르고 있던 새로운 걸 알았다.” 뭐 이런 식이다. 그런데 책을 만들고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염려스러운 게 있다. 그 관람자들이 달랑 두 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본 것으로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갖게 됐다고 간주하고, 더 이상의 자발적 학습을 마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성인의 1년 독서량이 아홉 권 정도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내 염려가 기우는 아닐 것이다(미국 성인은 1년 평균 60~70권을 읽는다). 다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오락활동으로 분류되는 영화 관람에서 얻어진 정보를 사리에 대한 통찰이나 분별에 필요한 지식으로 착각하는 것, 그게 우리 대중들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관습 아닐까. 문화소비에 들일 수 있는 비용이 가계 재정의 악화로 현저히 줄어든 것 역시 이러한 관행을 더욱 공고화시키는 것이다. 어쨌거나 영화가 대히트를 쳤으니 아마 앞으로 명량대첩과 이순신에 대해서 전문가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꽤 볼 수 있을 것 같다. 해당 책 한 권 안 읽은 전문가들 말이다. 내가 너무 냉소적이라면 미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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