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아파트 단지에서 매미 울음소리는 여름을 알리는 정겨운 노래가 아니라 소음이 된 지 오랩니다. 도시의 환한 조명 때문에 밤에도 울음을 쉬지 않습니다. 매미의 생태와 아파트 단지라는 환경 특성이 결합한 결과입니다.
땅속에서 3~7년을 굼벵이로 지내다가 땅 위로 올라와 우화(羽化)하고, 장거리 비행은 어려워 대개는 태어난 곳 가까이서 1~2주일 매미로서 살아갑니다. 반면 천적인 새는 마음 놓고 번식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아파트 단지의 매미는 산속보다도 서식밀도가 높습니다. 그만큼 치열한 짝짓기 경쟁을 거쳐야 하는 아파트 단지의 매미는 앞을 다투어 ‘목청’을 끌어올리게 됩니다. ‘자연선택’의 작용으로 점점 ‘목청’이 큰 매미가 늘어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정과, 오랜 땅 속 생활 끝에 맞은 짧은 삶을 짝짓기 열망으로 불태우는 서글픈 매미의 생태주기를 감안하면 그들이 악을 써서 짝을 부르는 소리에 대한 짜증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비가 지나간 8월 초 서울 강남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 화단에서 막 우화하는 참매미를 만났습니다. 굼벵이는 누에처럼 네 번이나 탈피를 한 끝에 거의 매미 모양을 갖추고, 껍질이 딱딱한 종령(種齡)이 되어 땅 밖으로 기어 나옵니다. 장맛비로 땅이 물렁물렁해진 시기, 그것도 해가 지고 새들이 잠든 밤을 정확히 고릅니다. 일단 땅 밖으로 나온 종령은 나무를 적당한 높이까지 기어오릅니다. 적당한 나무를 찾기도 전에 우화 초읽기에 들어간 종령은 가까운 풀이나 꽃에라도 급히 매달립니다. 더러는 보도 블록 위로 기어 나왔다가 사람들의 발 밑에서 허망하게 죽어가기도 합니다. 사진의 매미는 아파트단지 외부 화단의 맥문동 줄기에 매달려 우화하고 있습니다.
우화 과정은 종령의 등이 갈라지면서 시작됩니다. 그 순간 종령은 이미 생명이 없는 허물입니다. 허물의 갈라진 틈으로 머리를 뺀 매미는 윗몸을 잔뜩 뒤로 젖혀 서서히 몸을 뺍니다. 윗몸이 다 빠지면 이번에는 뒷다리 대신 앞다리 갈고리로, 나무 등걸 대신 허물을 잡고 꼬리를 뺍니다. 막 허물 밖으로 나온 매미는 몸통이 촉촉하고 보드랍습니다. 날개도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접혀 있습니다. 몸이 완전히 허물에서 빠지면 자리를 약간 옆으로 옮겨 밤바람에 몸과 날개를 말립니다. 처음 하얀색이었던 몸통과 날개가 말라가면서 조금씩 매미 본래의 색깔이 나타납니다. 새들이 먹이활동에 나서는 이튿날 아침이면 날개가 말라 딱딱해지고 보호색도 완전해집니다. 몸을 감추거나 불규칙 비행으로 새들의 공격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습니다. 글·사진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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