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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오 유물 2000여점...아! 태양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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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오 유물 2000여점...아! 태양의 제국

입력
2014.08.1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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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에 이색 볼거리로 잉카ㆍ마야박물관이 새로 문을 열었다. 전 볼리비아 대사였던 김홍락(왼쪽) 이사장과 주미영 관장 부부는 25년을 중남미에서 외교관 생활을 한 경험을 널리 알리고 싶어 폐교를 이용해 박물관을 조성했다.
문경에 이색 볼거리로 잉카ㆍ마야박물관이 새로 문을 열었다. 전 볼리비아 대사였던 김홍락(왼쪽) 이사장과 주미영 관장 부부는 25년을 중남미에서 외교관 생활을 한 경험을 널리 알리고 싶어 폐교를 이용해 박물관을 조성했다.

문경은 ‘패러다임 시프트(발상의 전환)’가 재바른 도시다. ‘석탄도시’에서 ‘관광도시’로 거듭났다. 일제시대 때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거의 반세기를 석탄도시로 명성을 드높였다. 특히 1960~1970년대 국가기간사업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당시 ‘문경에는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이후 산업화의 물결에 떠밀려 그 많던 광부들은 오간 데 없이 자취를 감췄다. 광업소에는 문 걸어 잠근 탄광만 을씨년스럽게 남았다.

문경은 새로 먹고 살 방법을 궁리했다. 주력한 것은 조선시대 신분의 귀천은 물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한양으로 향하던 문경새재길을 관광자원화 시키는 것. 2000년대 들어 웰빙 열풍 결에 함께 불어제친 걷기 열풍도 문경새재의 명성을 드높이는 데 단단히 한몫 했다. 그렇게 문경은 관광도시로 재탄생했다.

관광도시 문경은 진화한다. 이번에는 폐광을 ‘잔재’에서 ‘문화’로 승화시키는 작업에 착수한다. 1999년 구상된 석탄박물관은 2004년 화려하게 데뷔했다. 폐광의 부활이요, 석탄도시 문경의 르네상스 신호탄이었다. 문경석탄박물관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은 실제 갱도를 활용한 국내 유일의 전시장을 갖췄다는 것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박물관에는 석탄의 모든 것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석탄을 알려면 지질시대를 알아야 하고, 지질시대를 알려면 화석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나, 둘 알다 보면 우리네 지난(至難)한 근대사를 지려 밟고 와야 한다. 그렇게 가슴으로 석탄시대를, 1970년대를 알아간 방문객이 2012년에 이미 100만명(누적계)을 넘어섰다.

최근에는 문경시 가은읍에 이색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잉카?마야박물관이다. 문경과는 생뚱맞아 보이지만, 예단하면 곤란하다. 이 박물관은 12년 전 폐교된 문양초등학교 교사를 활용했다. 옛날 같으면 초등학교 이름이 내걸려 있을 교문 상단 곡선형 구조물에는 ‘Camino Real’이라고 쓰인 스페인어로 된 철제 간판이 걸려있다. 우리말로는 ‘제왕의 길’이란 뜻이다.

이 박물관이 들어선 데는 문경과 묘한 인연이 있어서다. 이 박물관 김홍락(63) 이사장과 주미영(56) 관장은 부부인데, 이들은 지난 2011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문경새재 옛길 박물관에서 ‘잉카의 옛길’이란 주제로 잉카유물 300점과 함께 전시회를 열었다.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당초 3개월만 전시하기로 한 것을 6개월로 연장했다. 그렇게 문경의 옛길을 걷기 위해 왔다가 잉카의 옛길과 그 문화에 매료된 사람이 6만 명이나 됐다. 문경시도 놀랐고, 김 이사장 부부도 놀랐다.

전시회가 끝나고 전시를 주관한 문경시와 주최한 김 이사장 부부는 서로 감사해 했지만, 내심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문경시로서는 새재의 ‘옛길’과 어울릴만한 흔치 않은 콘텐츠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쉬웠고, 김 이사장 부부 입장에서는 보유한 전시물의 일부만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김 이사장은 전직이 볼리비아 대사로 중남미 문화를 우리 국민에게 더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사재를 털어 폐교를 매입하고, 학교를 새 단장하기로 했다. 지난 7월 문을 연 잉카ㆍ마야박물관은 2층 규모로 잉카관, 마야관, 천사관, 유추(인디오들이 쓰던 모자)관, 카페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박물관은 토기류 1,000여점을 비롯해 세계에서 제일 높은 호수 ‘티티카카(3,810m)’에서 지금도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갈대배, 인디오들의 전통의상 등 모두 2,000여점의 유물을 소장ㆍ전시하고 있다.

땅의 상징인 퓨마를 깔고 앉음으로써 태양의 아들인 잉카의 위대함을 보여 주는 목각 인형.
땅의 상징인 퓨마를 깔고 앉음으로써 태양의 아들인 잉카의 위대함을 보여 주는 목각 인형.

잉카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잡는 것은 잘 생긴 마네킹이다. 이 마네킹은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돈키호테에 나오는 산초처럼 도포를 걸치고, 뿔피리를 매고, 각양각색의 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이름은 ‘차스키(파발꾼)’. 잉카제국(1463~1532)이 스페인에 점령당하기 전까지 잉카는 말 그대로 대국이었다. 오늘날의 페루, 볼리비아, 온두라스를 온전히 차지했고 과테말라, 칠레 일부도 아울렀다. 도로망은 로마제국의 그것만큼이나 광활하고도 정교했다. 그런데도 이동수단은 두 다리뿐이었다. 차스키는 광대한 지역을 오가며 중요한 정보와 특산물을 전해주고, 날라 왔다. 그 역할 때문인지 차스키는 귀족의 자제 중 18~25세 장정으로 가려 뽑았다고 한다.

천사관 한쪽 벽면에는 이색적인 천사장(Arch Angel) 그림 12점이 전시돼 있다. 화승총을 장전하는 모습, 갑옷을 입은 채 칼을 빼는 모습, 방패와 창을 든 모습 등 천사의 모습이 가지각색이다. 이 그림들의 탄생배경은 꽤 흥미롭다. 잉카를 점령한 스페인 정복자들이 원주민들에게 그림을 가르쳤고, 그 기술로 원주민들이 자기네만의 천사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 그림은 철저한 협업으로 완성됐다고 한다. 모자 그리는 사람 따로, 칼 그리는 사람, 신발 그리는 사람 등 부분마다 그리는 사람이 세분화되었다는 것. 그래서 이 그림에는 작가 서명이 없다.

문경시 관계자는 “문경과 어떤 구석이 닮았다고 하면 난센스일 수도 있겠지만, 문경의 옛길과 잉카ㆍ마야의 옛길, 문경의 석탄과 잉카ㆍ마야의 거석 등은 비교하면서 공부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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