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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람, 고운 황톳길 3관문 지나 저만치엔 옛 선비들 청운의 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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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람, 고운 황톳길 3관문 지나 저만치엔 옛 선비들 청운의 꿈이...

입력
2014.08.1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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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의 3개의 관문 중 2번째인 조곡관 주변엔 아름드리 소나무 밑 잠시 쉬어갈 그늘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경새재의 3개의 관문 중 2번째인 조곡관 주변엔 아름드리 소나무 밑 잠시 쉬어갈 그늘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경새재를 걷기 시작했다면 기어이 3관문을 통과하고 볼 일이다. 그래야 ‘문경새재 를 걸었다’는 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은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했다지만, 육체와 정신이 고될 때 비로소 주변을 돌아볼 마음의 눈이 열리기 마련이다.

문경새재는 문경과 충북 괴산군 사이에 있는 조선시대 옛길(영남대로)을 가리킨다. ‘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억새가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우릿재(이화령) 사이’ 등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 문경새재는 영남대로 구간 중 가장 높고 험한 고개이면서 영남과 한양을 잇는 최단거리였다.

문경새재는 과것길로도 유명했는데, 영남 선비들은 추풍령을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으로 넘어가면 ‘주르륵’ 미끄러진다는 속설 때문에 문경새재를 애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기에 문경(聞慶)이 ‘경사를 먼저 듣는다’는 뜻인 것도 영남 선비의 발길을 이끌었다는 그럴듯한 풍문도 있다.

문경새재는 장난치며 맨발걷기가 가능한 황톳길로 알려졌다. 직접 가서 봐도 그저 구불구불한 평지로만 보인다. 1관문을 지나 한 20분쯤 걷다 보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백두대간의 단전혈’이라더니 정말 좋은 기운이 몸을 휘감아 그런가도 싶고, 아무튼 참 쉬운 길인 듯싶다.

하나 문경새재는 가만가만 경사진 고갯길이다. 3관문 고갯마루는 해발 650m로 나름 고지다. 중간쯤인 2관문까지만 가도 숨이 거칠어진다. 대부분의 탐방객이 2관문에서 회귀본능을 발휘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문경새재는 1414년(태종 14년)에 조성된 이래 조선시대 내내 인산인해를 이뤘다. 폭 5m의 오늘날로 치면 고속도로 뺨치는 대로(大路)였다. 김천에서 충북 영동을 잇는 추풍령 고개를 넘어 한양을 가면 16일이, 경북 영주에서 충북 단양을 잇는 죽령을 넘어가면 15일이, 문경새재를 넘어가면 14일이 걸렸다고 한다. 문경새재를 관통하는 부산에서 한양까지 이어진 ‘영남대로’는 총장 380㎞로, 980리길이었다.

문경새재에서 만나는 한글로 된 산불조심 비석.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경새재에서 만나는 한글로 된 산불조심 비석.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경새재를 걷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드라마촬영세트장을 구경하러 왔다가 걷기 대열에 합류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3관문까지 걷지 않는다고 뭐라 할 수는 없지만 문경새재의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것만은 지적해야겠다.

문경새재를 걷는 사람들 태반은 그냥 앞만 보고 걸어간다. 그러다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며 깔깔댄다. 이 길이 오랜 역사를 가졌다는 것쯤은 알 텐데, 또 실제 양 길가로 그 역사를 증거하고 증명하는 유적과 유물이 널렸는데도 도무지 관심이 없다. 숱한 사람들에게 문경새재는 옛길로 인식된 그저 보기 좋은 현재길 일뿐이다.

문경새재가 좋은 건 빼어난 경관, 시원한 바람, 고운 황톳길이다. 그러다 2관문에 당도할 즈음이면 경관도, 바람도, 황톳길도 그만하면 됐다고 느낀다. 몸이 ‘요기까지’라고 보내는 신호에 굴복하기가 쉽다. 하지만 3관문까지 주파해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진짜 장난 아닌 길’이라고 느낄 때, 그때가 문경새재를 바로 볼 수 있는 기회다. “아, 옛날 사람들은 이 길을 매번 어떻게 걸어다녔을까”하고.

느껴야 알아갈 마음이 생기고, 알아야 사랑할 수 있는 법이다. 3개나 있는 관문, 순 한글로 된 ‘산불됴심’ 비, 정자 ‘교귀정’, 시비, 마애비, 선정비, 공덕비, 불망비 등등. 이것들은 알아야 한다고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저마다의 가슴으로 느끼며 아로새겨야 하는 것이다. 3관문까지 가 봐야 옛 사람들의 흔적을 하나하나 보듬어 볼 마음이 동하게 된다. 문경새재 1, 2, 3관문을 지난다는 것은 우리들 마음의 빗장을 차례로 풀고, 옛 사람들을 품는다는 것이다. 문경새재를 걷는다는 것은 실로 그러는 것이다.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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