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사망 아빠 옮기던 관리 주민에게 가까이 말라는 말만
밤낮 없는 물과 음식 호소 외면 당해… 지맵 등 치료제 물량 없어 대책 의문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한 마을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12세 소녀가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집안에 갇혀 굶고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 곁에서 끝내 숨지고 말았다.
AFP통신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자가 찾은 발라자 마을은 대부분의 주민이 에볼라 바이러스를 피해 집을 버리고 떠나 적막감만 감돌고 있었다. 수도 몬로비아에서 150㎞ 떨어진 이 마을에서 들려오는 유일한 소리는 방안에 갇힌 채 이미 세상을 떠난 엄마의 시신 옆에서 배고픔과 갈증에 지친 열두 살 소녀 파투 셰리프의 울음소리뿐이었다.
파투는 라이베리아와 인근 국가들을 강타한 에볼라에 대한 공포로 대부분 주민이 떠나버린 이 마을에서 바이러스 감염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의 시신을 마주하고 일주일간 방안에 갇혀 있었다. 마을 여기저기에는 가재도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어떤 집들은 방문이 열려 있다. 에볼라 발병 이후 주민들이 얼마나 황급히 마을을 떠났는지 짐작하게 했다.
마을에 남은 몇 안 되는 주민 중 한 사람인 모모 윌레(70)는 이 마을 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에볼라 창궐로 마을이 지난 6일 정부의 통행제한 구역으로 지정됐다고 말했다. 라이베리아에서는 지금까지 599명의 감염자가 발생해 3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20일 파투의 아버지가 에볼라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지자 500여명에 이르는 주민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보건소 직원들이 도착한 건 아버지가 숨진 지 닷새가 지난 뒤. 검사 결과 어머니와 파투도 이미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으나 오빠인 바니(15)는 괜찮았다. 아버지의 시신을 옮기던 관리들은 주민들에게 모녀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귀띔을 했다. 윌레는 “모녀는 밤낮으로 울면서 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달라고 간청했으나 모두가 두려워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12일 기자가 파투의 집을 다시 찾았을 때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방문과 창문은 모두 봉해져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물과 음식을 먹지 못한 파투는 전날 밤 끝내 홀로 숨졌다고 윌레는 전했다.
앞서 10일 기자와 마주친 바니는 “여기에서 잠을 자요. 온종일 이곳에서 지내죠. 아무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으려 해요. 감염자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말이죠”라고 울먹였다. “배가 고플 땐 숲으로 가 풀을 뜯어 먹어요.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있어요”라고 말하던 유일한 생존자 바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시험단계의 에볼라 치료제 사용을 허가했지만 당장 환자들에게 투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에볼라 대응에 얼마나 효과적일지 미지수다. 시험단계 치료제 중 가장 이목을 끈 지맵(Zmapp)의 개발사인 맵 바이오제약은 물량이 이미 소진됐다고 밝혔다. 임상시험 단계라 원래 12명분 정도에 불과했는데 미국인 환자 2명과 사망한 스페인 신부에게 투여됐고 라이베리아와 나이지리아에도 조만간 일부가 공급될 예정이다. 향후 추가 생산에는 몇 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캐나다 제약사인 테크미라의 치료제 TKM-에볼라는 지난달 안전문제로 임상시험이 중단됐다가 이번 에볼라 사태를 맞아 환자에게 투여할 길이 열렸으나 물량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제약사 사렙다 역시 에볼라 치료제를 개발했으나 건강한 인체를 대상으로 한 초기 단계의 임상시험만 진행된 정도다. 예방백신도 당장 접종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프로펙터스 바이오사이언스는 각각 개발한 예방백신 2종을 몇 주 안에 임상시험할 예정이지만 실제 접종 가능 여부는 연말에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WHO가 밝혔다. 존슨앤드존슨의 제약사 크루셀도 이르면 연말 임상시험에 착수할 예정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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