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시모어 호프먼, 로빈 윌리엄스
외모형 배우는 아니었지만 푸근한 인상ㆍ생활 속 연기로 사랑
불우한 삶 뒤로하고 아쉬운 작별


사내의 팔이 부르르 떨렸다. 진동이 순식간에 온 몸으로 퍼지더니 입에서 짧은 욕이 터져 나왔다. 스크린과 객석 사이로 전류가 흘렀다. 탄식이 나왔다. “역시 다르구나”라고 생각하는 찰나 허전함이 거세게 몰려왔다. “앞으로 이런 명연을 다시 볼 수 없다니…” 그는 더 이상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다.
7일 개봉한 ‘모스트 원티드 맨’(감독 안톤 코르빈)은 필립 시모어 호프먼의 모습과 연기만으로도 상영시간 121분이 즐거운 영화다. 최정예 첩보원이었다가 한번의 작전 실패로 동료를 잃고 좌천한 중년의 사내 군터 바흐만이 중심이다. 바흐만은 불명예를 씻으러 큰 건 하나를 노린다. 자잘한 테러용의자 한 두 명을 잡는, 눈앞의 실적보다 국가안보에 크게 공헌할 굵직한 건수를 잡으려 한다. 모든 일이 의도대로 진행됐으나 인생은 막판에 그를 배신한다. 격무와 줄담배와 스트레스에 찌든 바흐만은 호프먼 자체로 보였다. 얼굴은 감정의 변이에 따라 붉으락푸르락했고, 커다란 덩치는 마음의 파도에 따라 미세하게 떨렸다.
호프먼은 생활 연기자였다. 삶의 모습을 그대로 옮긴 듯한 연기가 매번 눈을 사로잡았다. 단박에 눈에 들어올 ‘외모파’ 배우는 아니었다. 뒤늦게 그의 존재감을 깨달았다. ‘부기 나이트’(1997)가 인상적이었다. 동성에게 조심스럽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외면 받은 뒤 처절하게 몸 속으로 삼키던 “노(No)”라는 대사만으로 그의 이름을 찾게 했다. 학창시절부터 약물중독에 시달리던 그의 스크린 밖 삶은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2007)에 투영됐다. 약에 취해 범죄를 저지르다 파국으로 몰리는 영화 속 그의 모습을 보며 고약한 예감을 했다. 그는 2월 뉴욕 자신의 아파트에서 약물과용으로 숨졌다.
호프먼 이전에 마음을 사로잡은 서민형 연기자는 로빈 윌리엄스였다. 잘생기지도, 우람하지도 않은 외모로도 그는 스타가 됐다. 푸근한 인상이 무기였다. 코미디나 드라마에서 종종 기분 좋은 미소를 선사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1989)에서 자유분방한 교사 키팅을 연기했을 때 젊은 영화팬들은 그를 ‘마이 캡틴’(영화 속에서 학생들이 키팅에게 존경을 표할 때 쓰는 호칭이다)이라 부르곤 했다. 관객이 표할 수 있는 친밀함의 최대치였다.
‘굿모닝 베트남’(1987)에서 공군 라디오방송 진행자를 연기했던 그의 모습은 특히 인간적이었다. 루이 암스트롱의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를 소개한 뒤 그가 짧은 감탄사를 뱉을 때 관객들은 잠시나마 평온을 느낄 수 있었다. 윌리엄스의 쾌활함 뒤에 약물중독과 알코올중독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눈 밑에 깃든 어둠을 가늠했다. ‘인썸니아’(2002)에서 냉혈 살인마로 변한 모습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높고 깊은 감정의 진폭을 견뎌낸 인물이니 악역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윌리엄스가 세상을 떠났다. 약물중독 등에 따른 후유증이 그의 목숨을 이르게 앗아간 듯하다. 외모보단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휘저었던 호프먼과 윌리엄스의 불운한 죽음이 안타깝다. 두 배우의 부재가 주는 슬픔이 무겁기만 한 여름이다.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