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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온반·꼬장떡… 함께 먹으며 통일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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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온반·꼬장떡… 함께 먹으며 통일 꿈꿔요”

입력
2014.08.1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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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청년 10명이 결성한 요리모임 '통일상차림' 셰프들 첫 실전에 나서

한국국제요리 수상 등 실력파들 "고향의 맛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남한 입맛에 맞는 요리 만들 것"

요리모임 ‘통일상차림’의 탈북청년 셰프들이 지난달 26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한 교회 조리실에서 평양온반 나물밥 등 북한에서 즐겨 먹던 음식을 요리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앞 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봉철 석윤지 이성진 한은경 최서연 김하나씨.
요리모임 ‘통일상차림’의 탈북청년 셰프들이 지난달 26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한 교회 조리실에서 평양온반 나물밥 등 북한에서 즐겨 먹던 음식을 요리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앞 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봉철 석윤지 이성진 한은경 최서연 김하나씨.

구수한 닭 육수 냄새가 주방 가득 퍼졌다. 조리복을 입은 정봉철(24)씨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불을 살폈다. 뚝배기에 생닭을 눕히고 마늘과 버섯, 양파 등을 넣고 1시간여 끓여 국물을 우렸다. 그 옆에서는 이성진(24)씨가 목이나물 무시래기 취 고사리 고구마순 곤드레를 한 움큼씩 살짝 데쳤다. “본연의 맛을 살렸다”며 자찬한 나물에선 산 내음이 물씬 났다. 옆에 있던 김하나(26)씨가 피식 웃더니 “비장의 무기요”라며 깍두기통을 열었다. 한 입 크기의 통통한 명태 토막 너댓 점이 소면 위에 올라가자 제법 모양새가 났다.

지난달 26일 오후, 조용하던 서울 금천구 가산동 한 교회 조리실은 요리사들의 실력발휘로 부산했다. 석 달 전 결성된 탈북청년 10명의 요리모임인 ‘통일상차림’ 셰프들이 “진짜 북한 밥상을 차리겠다”며 조리복을 빼 입고 처음 실전 요리에 나선 것. ‘통일상차림’이라는 이름은 ‘통일은 남북청년들이 하루 세끼 앉는 밥상머리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공감대를 쌓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뜻으로 지었다.

이날 요리의 주재료는 쌀과 밀이 귀한 북에서 주식으로 이용되던 옥수수. 정씨가 옥수수 전분 반죽을 구운 노란 ‘꼬장떡’을 한 입 물더니 “밍밍하다”며 투덜댔다. 정씨는 밥에 뜨거운 고깃국물을 부어 먹는 장국밥인 평양온반을 만들려고 하는데 원래 고명으로 올라가는 녹두전 대신 올릴 떡이었다.

프라이팬으로 떡을 굽던 석윤지(27)씨와 한은경(21)씨가 “북에서 가마솥에 넣어 먹던 맛과 똑같겠냐”고 타박하자, 정씨는 머쓱해 했다. 그는 8살이던 1998년부터 4년간 매년 겨울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넜다가 중국 공안에 붙잡히기를 반복했다. 중국의 감옥에서 북송을 기다릴 때까지 질릴 정도로 먹었던 꼬장떡이지만, 4전 5기로 2003년 한국 땅을 밟고서는 추억의 음식이 됐다. 정씨는 “수감자에게는 소금 친 꼬장떡 한 장이 한끼였다. 어찌나 굶었던지 윤기 없던 떡도 꿀맛이었다”고 회고했다.

함경도 어랑군 바닷가가 고향인 김하나씨는 매끼 먹던 명태식해깍두기(식해는 북에선 ‘숙성’을 의미)로 여름철 별미 함경도식 김치말이식해소면을 선보였다. 명태를 소금에 사흘쯤 절였다가 김치양념으로 담근 뒤 40여일을 숙성시킨 깍두기다. 한 젓가락씩 입에 넣은 셰프들은 “쫄깃한 옥수수소면과 찰떡궁합”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씨는 잘게 뜯은 닭 속살과 꼬장떡, 시금치, 숙주나물을 밥 위에 올린 온반을 맛보더니 엄지를 세웠다. “평양온반을 삼계탕에 버금가는 ‘명품 보양식’으로 선보일 거예요.”

그럴 만하다. 정씨를 포함한 탈북청년 셰프들은 실력파다. 정씨는 친구 이성진씨와 함께 올해 5월 한국국제요리경연대회에서 평양온반으로 동상을 탔다. 김하나씨는 지난해 8월 끝난 한 케이블 방송 요리오디션에서 지원자 6,500명 중 4위에 올랐다. 당시 아버지를 떠올리며 자주 먹던 코다리 양념구이를 선보였다. 그녀는 10살 때 아버지와 함께 탈북을 시도하다가 생이별한 뒤 줄곧 부친의 생사조차 모른다. 그녀는 도망가다가 붙잡힌 아버지가 북한군에게 소총 개머리판으로 사정 없이 두들겨 맞는 걸 지켜만 봐야 했다. 아버지를 그리며 요리하던 코다리 구이와 김치말이소면, 어랑만두 등이 그녀의 주특기가 됐다.

이성진씨는 7살 때 고향 청진에서의 풍경이 잊히지 않는다. 배가 고프다던 여동생(당시 5세)과 근처 과수원에 가서 바닥에 나뒹구는 꽁꽁 언 배를 허겁지겁 주워 먹고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니 동생은 입에 거품을 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동생은 오빠의 등에 업혀 숨을 거뒀다. 이씨는 “고향에 가 동생 제사상에 따뜻한 밥을 올리고 싶다”고 했다.

이처럼 이들 탈북청년들에게 통일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더 없이 간절한 현실의 꿈이다. 9살까지 북에서 꽃제비로 살았던 김하나씨는 고향에 보육원을 짓는 게 소원이라고 했고, 정씨는 어머니와 함께 북에 가 12년 전 정치범수용소에서 사망했다던 아버지의 흔적을 찾고 싶어한다.

통일상차림 셰프들의 다음 도전 요리는 냉면이다. 자신들도 생경한 남한의 ‘함흥식’‘평양식’ 냉면을 맛보고 연구해 북한 맛으로 복원해보기로 했다. 진짜 북한의 맛을 감추지 않으면서 남한의 입맛에도 맞는 냉면에 도전할 생각이다.

셰프들은 남한 청년들에게 이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곧 우리 요리로 밥상머리에서 같이 밥 먹어요. 함께 통일의 맛을 요리해요.”

글ㆍ사진=손현성기자 hshs@hk.co.kr

김민정기자 mjkim7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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