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결과' 지적… '먹튀·일회성 이벤트' 논란도
3만6천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됐던 이소연씨가 12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퇴사했다.
일각에서는 수백억원을 들인 '우주 관광객'이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첫 우주인 배출 이후 후속 연구가 이어지지 않으면서 예견된 결과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우주인 배출사업은 한국 최초 우주인 배출 및 유인 우주기술 확보를 위해 2005년 11월 시작돼 2008년 6월까지 모두 256억2천200만원이 투입됐다.
이씨는 2008년 당시 우주인 후보였던 고산씨가 훈련교재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탈락하면서 그 해 4월8일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다녀와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하지만 우주인 배출 이후 후속 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결국 우주인 배출 사업이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항우연은 후속연구로 우주인 활동 및 관리, 한국형 유인우주프로그램 개발, 마이크로중력 활용 유인우주기반기술 연구 등을 내세웠지만 5년 동안 후속사업에 들어간 예산은 40억원 남짓에 불과했다.
이 사업의 유일한 결과물인 이소연 박사의 우주 경험은 대중 강연이나 교육 프로그램으로만 활용됐을 뿐 체계적인 우주인 육성 계획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게다가 이씨가 2012년 8월 돌연 휴직계를 내고 미국으로 가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UC 버클리)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으면서, 일부에서 '먹튀' 논란까지 일었다.
하지만 이씨의 항우연 의무 근무 기간이 2008년 끝났고, KAIST 겸임교수직 임기도 지난해 8월로 만료된 만큼 이씨 개인에 대한 비난은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이씨는 의무 근무 기간이 만료된 뒤 별다른 후속 연구가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진로에 대해 고민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규수 항우연 홍보실장은 "처음 우주인 배출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후속 우주인 양성에 대한 계획은 없었다"며 "당시 분위기는 우주 강국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네팔이나 아프가니스탄, 말레이시아 등에도 있는 우주인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1호 우주인을 양산하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이씨는 미국 내 우주 관련 기구에서 초청을 받아 연설·강연 등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부에서 말하는 대로 우주인 타이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앞으로도 대중강연이나 기념사업 등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연합뉴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