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안수기도로 딸 죽게 만든 천주교신자에 집유 선고
아버지 박모(61)씨는 딸(32)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건강하던 딸은 5년 전부터 심한 정신분열증과 망상에 시달렸다. 딸 박씨의 병은 2009년 자신에게 이유 없이 심한 욕설을 하던 지하철 승객을 만난 후부터 시작됐다. 이후 딸은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불안해 했다.
박씨 가족은 딸을 치료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수많은 상담치료와 입원치료를 하고 한적한 수도원에 요양까지 시켰지만, 딸의 증세는 외려 심각해졌다. 차도가 없는 딸의 병증에 가족들은 절망했고, 이들에게 기댈 곳이라곤 그들이 믿는 하느님 외엔 없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박씨 가족은 그저 ‘딸의 병을 낫게 해달라’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같은 성당의 신자 김모(59)씨의 안수기도가 효과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딸을 위한 기도를 청했다. 안수기도는 천주교 사제인 신부가 신자의 머리 등에 손을 얹고, 평안을 기원하는 의식을 말한다. 드물지만 신앙심이 깊은 평신도가 하는 경우도 있다.
김씨는 올해 2월부터 일주일 간격으로 서울 은평구 박씨의 집을 찾아 딸 박씨의 복부와 양 옆구리를 반복해 누르며 1시간씩 기도를 바쳤다. 딸 박씨의 증세가 5번째 기도가 끝난 시점부터 눈에 띄게 좋아졌고, 이에 고무된 가족은 안수기도를 더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조급증이 결국 화를 불렀다. 3월 23일 안수기도를 앞두고 딸은 다시 발작증세를 일으켰다. 이에 아버지와 김씨는 오전 7시부터 무려 12시간 동안 딸을 붙잡고 더 열심히 기도했다. 거부하는 딸을 억지로 뉘이다 벽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쳤다. 딸은 의식을 잃고 이날 밤 끝내 사망했다.
서울서부지법 제11형사부(부장 성지호)는 폭행치사 혐의로 기소된 아버지 박씨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김씨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지만 피해자를 치료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비롯됐고, 피고인들이 깊이 반성하는 점을 감안했다”며 아버지를 선처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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