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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계에서도 외계인, 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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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계에서도 외계인, 두 감독

입력
2014.08.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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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중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하던 백승기 감독은 '숫호구'에서 연출과 주연, 각본, 편집을 맡아 1인 4역을 했다. 영화 '아바타'를 저렴하게 패러디한 장면이 압권이다. 엣나인필름 제공
인천에서 중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하던 백승기 감독은 '숫호구'에서 연출과 주연, 각본, 편집을 맡아 1인 4역을 했다. 영화 '아바타'를 저렴하게 패러디한 장면이 압권이다. 엣나인필름 제공

1990년대 말 부천을 배경으로 한 '18: 우리들의 성장 누와르'는 남자 고교생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힘의 역학관계와 성장통을 그린다. '국가대표'의 이재응을 비롯해 차엽, 이익준, 배유람 등 젊은 배우들의 호연이 눈에 띈다. 어뮤즈 제공
1990년대 말 부천을 배경으로 한 '18: 우리들의 성장 누와르'는 남자 고교생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힘의 역학관계와 성장통을 그린다. '국가대표'의 이재응을 비롯해 차엽, 이익준, 배유람 등 젊은 배우들의 호연이 눈에 띈다. 어뮤즈 제공

고래 싸움에 나선 새우 같은 영화들이 있다. ‘명량’이나 ‘해적’ 한 편 찍을 제작비로 수백 편은 만들 수 있을 만큼 작은 영화, 실눈을 뜨고 뒤적여야 개봉관을 찾을 수 있는 영화, 독립영화보다 더 독립적인 영화. 초저예산 독립영화 ‘숫호구’가 7일 개봉한 데 이어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가 14일 개봉한다. 유명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지도, 상업영화 현장에서 경험을 쌓지도 않았지만 열정 하나만으로 영화를 완성해 관객과 만나는 두 감독을 만났다.

‘숫호구’의 백승기 감독

친구들과 스튜디오 만들어 시작, 부천영화제 수상했지만 무명 설움

"C급 무비지만 사활 걸고 찍었다"

백승기(32) 감독은 자신이 연출과 주연을 맡은 영화 ‘숫호구’를 ‘병맛(황당하고 어이없는 유머 코드) C급 무비’라고 설명한다. 서른 살 먹도록 연애 한번 못한 남자가 ‘슈퍼 섹시 아바타’를 이용해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다가간다는 설정부터 황당하다. 연출과 연기, 촬영 모두 몹시도 어설프고 엉성한데 뻔뻔하게 허풍을 늘어놓는 이 영화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상업영화계와 타협하지 않는 독립 정신이 대견하다.

인천 시민인 백 감독은 인천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독립영화 감독이다. 영화 지식도 현장 경험도 전무하지만 친구들과 꾸러기스튜디오라는 영화사를 세워 제작한 것만 ‘됐쓰노트’ ‘망치손’ ‘달마도 코드’ 등 200여 편이다.

“군 제대 후 친구들과 엠티 가서 재미 삼아 동영상을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사람들 눈엔 영화가 아닌 UCC(사용자제작콘텐츠) 동영상에 불과했다. 영화제엔 출품하는 족족 퇴짜를 맞았다. 그래서 동네 옥상에서 영화제를 열고 ‘디지비’라고 작은 극장을 만들기도 했지만 소득 없이 버티긴 힘들었다.

전공을 살려 교사가 된 그는 영화 동아리를 만들어 제자들과 함께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성공해 돌아오겠다”며 인천에서 서울 강남으로 터를 옮겼지만 여의치 않았다. 통장이 바닥났을 때쯤 인천으로 돌아와 “사활을 걸고 모든 걸 쏟아보자는 마음”으로 찍은 게 ‘숫호구’다.

주인공 여배우가 ‘수준 이하’라며 촬영 막바지에 발을 빼는 등 곡절을 겪으며 완성했지만 그 후에도 1년간 자포자기의 세월을 보냈다. 2012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후지필름이터나상을 수상하며 무명의 설움이 끝나는 듯했으나 우울한 나날이 다시 이어졌다. 그러던 그에게 지난해 구세주가 등장했다. 영화사 엣나인필름의 정상진 대표가 ‘숫호구’의 배급을 맡고 차기작 제작비 1,000만원을 쾌척한 것이다.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공식이 짜여 있는 것 같아요. 영화과를 나오지 않고 인맥이 없으면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구조죠. 허술하더라도 저 같은 사람이 나와야죠. 전 제자들이 정답을 못 맞추더라도 주체적으로 살며 매력적인 오답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 영화계에 ‘숫호구’ 같은 영화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의 한윤선 감독

지방 대안학교 다니며 영화 공부, 단편영화 찍다 첫 장편에 도전

"최선 다해 고졸 감독 편견 깨고파"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로 데뷔하는 한윤선(31) 감독은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영화보다 이력이 파란만장하다. 장동건 주연의 ‘친구’의 고등학생판 성장 드라마라 할 수 있는 이 영화가 힌트다. 그는 “나와 친구들의 경험담을 섞은 것”이라고 했다.

싸움 잘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다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한 감독도 중학생 시절 ‘조용한 문제아’였다. 거친 친구들과 어울리다 학교를 한 달 빼먹기도 했고 친구들과 다른 패거리를 상대로 패싸움도 했다. 영화 빼고 좋아하는 게 없던 그는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에 고교 진학을 포기한 채 편집실을 다니며 동영상 편집을 배웠다.

지방의 대안학교를 다니며 영화 교육기관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군 복무를 마친 뒤엔 영화 유학을 준비했다. 미국 유학을 위해 필리핀에 어학 연수를 떠났다가 강도를 만나 죽을 뻔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못하는 거 외국 나가면 뭐하나 싶어 돌아와 돈을 벌며 단편영화를 찍기 시작했어요. 대학 다니면서 밤새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침에 영화를 찍는 식이었죠.”

대학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단편영화를 만드는 일에 집중했지만 좀처럼 괜찮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좋은 영화를 찍으려면 좋은 스태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나리오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게 문제였다. 미완성 시나리오가 쌓여갔다. “우선 찍지 않으면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첫 장편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 제작을 시작했다. 8,000만원의 제작비는 주위 사람들에게 빌리고 제2금융권 대출까지 받았다. 다행히 이 영화는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돼 LG하이엔텍상을 수상했고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를 하면서 학력에 대한 열등감이 컸어요. 무시도 많이 당했고요. 하지만 서러운 일이 있어도 티를 내지 않았죠. 그 사람들 입장이면 그럴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내가 먼저 최선을 다해 행동하려 해요. 저에 관한 편견을 깨야 저 같은 사람들이 또 영화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고졸이라는 학력을 극복한) 류승완 감독처럼 되고 싶어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죠.”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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