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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신드롬 왜?

입력
2014.08.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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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후 정치권 무능 실망… 위기 때 진정한 지도자 모습 느낀 듯

영화 '명량' 스틸 이미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 '명량' 스틸 이미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강남에서 근무하는 회사원 박민영(29ㆍ여)씨는 11일 오전 8시 밤샘 야근을 끝내고 인근 코엑스 메가박스 영화관을 찾았다 깜짝 놀랐다. 관람객이 가장 덜 몰리는 월요일에다 첫 상영이어서 한산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평소 30명이 채 되지 않는 상영관에는 100명에 가까운 관객이 들어 차 있었다. 모두 영화 ‘명량’을 관람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이씨는 “조조 상영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영화관을 찾은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명량’ 열풍이 거세다. 단순한 열풍을 넘어 신드롬이라 부를 만하다. 역대 최단 기간(12일)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답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발걸음을 극장으로 이끌고 있다.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만 16개 상영관 중 절반에 명량을 배당했고, 횟수도 오전 8시부터 이튿날 오전 2시까지 45회나 편성돼 있다. 이날 이 영화관에서 관객이 뜸하다는 오후 3시 이전 명량의 좌석 점유율은 33%에 달했다. 영화관 관계자는 “월요일 낮 시간대는 원래 흥행 여부와 관계없이 관객수가 비슷하지만 명량은 유독 1.5배 가량 많은 관람객이 몰렸다”며 “주말 오후 시간대는 전 좌석이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완성도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반응이다. 회사원 황성현(38)씨는 “솔직히 스토리만 따지면 왜 보는지 모르겠다. 익히 알려진 서사에 독특한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장점을 꼽으라면 시각적 효과가 조금 뛰어난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서운 속도의 흥행 질주에는 ‘이순신’이라는 이름값을 넘는 무언가의 흡인력이 있다고 관객들은 지적했다.

대학원생 김하은(29ㆍ여)씨는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요즘의 시대적 화두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고 했다. 그는 “당쟁을 일삼다 전쟁에 대비하지 못한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진상규명을 놓고 다투는 대한민국 정치권의 무능함이 오버랩됐다”며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 리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정성룡(60)씨는 “세월호 선장은 배를 버리고 도망갔지만 이순신 장군은 훨씬 극한 상황에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민중과 함께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누가 책임을 지는가’의 문제”라며 “이순신이라는 과거 속 대리인은 국민이 혼란스러워 하는 물음에 명확한 해답을 줬다”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의 계속되는 극우 행보에 대한 반일 감정을 언급하는 이들도 많았다. 회사원 신지윤(31ㆍ여)씨는 “일본 병사가 죽는 장면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영화 곳곳에 애국심에 기댄 장치를 심어 놓아 관객들이 감정 이입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윤희 인천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들은 일본 아베 정권의 도발을 규탄하면서도 한일관계 악화가 외교적 사안인 탓에 피부에 와 닿지 않았는데 명량이 잠재된 한국인의 분노를 끌어냈다”고 해석했다.

명량의 지지자들이 보내는 메시지는 결국 정부를 향해 있다. 이날 딸과 함께 극장을 찾은 유수진(45ㆍ여)씨는 “이순신 같은 인재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때 마음이 아팠다”고 했고, 회사원 민정홍(28)씨는 “최근 화제가 된 관피아니 해피아니 하는 문제들도 결국은 지도자의 잘못된 인사에서 비롯된다는 진리를 새삼 일깨워 줬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는 “영화의 성공은 절망적인 사회 현실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순신 장군이 ‘난국’으로 칭했던 조선 선조시대가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이라며 “명량의 흥행에는 오늘은 좌절해도 내일은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싶다는 시대상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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