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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아픈 현실을 카메라에…'전쟁과 퓰리처상'

입력
2014.08.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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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부는 일요일에 퓰리처상 수상전을 보러 갔다. 퓰리처상은 1917년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가 언론과 공공을 위해 사용해 달라는 유언과 함께 컬럼비아대학에 200만 달러를 기부하며 시작된 상이다. 이번 퓰리처상 수상전시는 보도부문의 발표 첫 해였던 1942년부터 올해까지, 기자정신이 만들어 낸 저널리즘의 뛰어난 수상작들이다.

전시장에 들어가 시대 순으로 구성된 관람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사건ㆍ사고와 함께 세계의 아픈 근ㆍ현대사를 들여다보게 된다. ‘한국전쟁’은 대동강을 넘기 위해 폭격으로 뒤틀리고 무너진 다리를 필사적으로 기어 넘는 피난민의 절박한 순간을 담았으며, ‘베트남-전쟁의 테러’는 네이팜탄의 폭발로 뜨거운 불길 속에 벌거벗은 채 뛰어나오는 소녀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은 기근으로 굶주림에 지쳐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소녀와 그 아이를 먹잇감으로 생각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흰 부리 독수리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보도보다 생명구출이 우선이 아니냐는 세간의 질책과 분노에 결국 기자가 33살의 나이로 자살을 해 더욱 슬픈 인간사를 보여준 사진이다.

‘보스턴 마라톤 폭발’은 올해의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이다. 침상에 누워 두 팔을 벌리고 평온하게 천정을 응시하는 청년은 무릎아래 두 다리가 없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한 여자 친구를 응원하러 갔다가 압력솥 폭탄이 폭발해 두 다리를 잃은 것이다. 그는 사고 후 병원에서 정상적인 삶을 목표로 삼고 플라스틱 다리로 재활에 힘쓰는 밝은 모습을 보여 준다.

퓰리처상은 이처럼 기아, 테러, 재난 등 삶에서 겪는 다양한 모습들을 담고 있다. 그 중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되는 것은 퓰리처상이라는 것이 대부분 전쟁의 역사이고 전쟁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고통스럽고,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카메라에 담으며 이 사실을 잊지 말고 비극을 반복하지 말자는 메시지이자 동시에 역설적으로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또한 무엇보다도 퓰리처상이 감동적인 것은 전쟁의 고통을 딛고 일어선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으며 비극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 승리가 있다. 그래서 전쟁 때문에 6년간 억류됐던 공군 병사가 전쟁 후 가족과 재회할 수 있었고, 테러의 상처를 딛고 재활에 성공하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런 가족애 바로 인간애이다. 1962년 베네수엘라의 반란에서 군종 신부가 빗발치는 총알에도 꿋꿋하게 부상당한 병사를 부축이고 있는 ‘신부의 도움’이라는 사진처럼 말이다.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라 말하지만 적어도 전쟁의 역사만큼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극적으로 3일간의 휴전에 들어가긴 했지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공세로 팔레스타인의 어린아이와 여자들이 죽었다. 폭격으로 숨진 어머니의 뱃속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기적이 있었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유일하게 남은 발전소를 폭격하자 병원의 전기 공급이 중단돼 인큐베이터 산소 호흡기로 생명을 이어오던 아이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외신도 있었다. 이것은 국가 간 전투요원들의 전쟁이 아닌 민간인 학살의 문제다.

리비아에서는 이슬람 무장단체들 간의 내전이 격화하고 있다. 하루 종일 포탄이 떨어지는 곳에서 여린 생명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또한 공교롭게도 퓰리처상을 만든 미국은 이라크 철군 3년 만에 다시 이라크 공습을 감행하고 있다. 일격을 당한 이라크 반군도 반격에 나서 이라크 사태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예측되고 있다.

전쟁은 각자 정당하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 모든 전쟁은 정당할 수 없다.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전쟁터에서 수많은 기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비극의 현장을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렌즈를 통해 현장을 바라보는 의미를 기억했으면 한다. 나아가 그 의미가 지금 전쟁을 겪는 곳곳에 전해지길 바라며, 앞으로 퓰리처상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다루는 사진이 없어지길 소망한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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