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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그녀가 지금 울기라도 할 수 있을까?

입력
2014.08.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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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공식일정을 마치고 이스라엘로 넘어가기 전 이틀간 여유가 생겼다. 카파도키아를 꼭 가보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서울, 대전 거리도 아닌 두 도시를 왕복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이스탄불 하나만해도 이종문화를 교배해 가꿔낸 긴 역사를 하루 이틀에 훑는다는 것은 교만일터. 그간 익숙해진 호텔 뒤 탁심광장을 빼면 이 도시를 무엇부터 어떻게 봐야 할지 도통 엄두가 나지 않는데… 백문이 불여일견, 우선 부딪치기로 했다. 속살을 들여다 보는 것은 다음 인연으로 미루고 이동수단 때문에 더 막막한 낯선 도시에서 여러 번 효과적이었던 관광상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꿈꾸던 곳에서 관광객이 돼볼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만 있었지 슬픈 눈을 만나게 될 것은 몰랐다. 그리고 오늘, 비극으로 기억을 끄집어낼 줄은 더더욱 몰랐다.

족히 사나흘 분은 됨직한 식량을 배에 저장한 그리스인, 묻지도 않는 얘기 보따리를 수선스럽게 펼쳐놓는 스페인 일가, 모이 받아먹는 병아리처럼 깃발 아래 줄 서 따르는 일본인 무리와 함께 둘러앉은 식당에서 묘한 긴장감으로 민첩하게 움직이는 그녀를 만났다. 다정도 병이라 부담스럽게 친절한 기사가 사방으로 끌고 다니는 동안 한번도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는데 막상 마주앉으니 놀랍게 아름답다. 그런데 정확한 발음으로 구사하는 영어에는 격한 감정이 실렸다. 게다가 도저히 25살로 보이지 않는 그녀의 깊은 갈색 눈에는 공포와 분노가 이글거린다.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그녀는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인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하며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벌써 2년, 얼굴뿐만 아니라 집안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도 알고 남았을 그 긴 시간을 단 하루, 단 한번도 거른 일 없는 ‘통행증 검사’를 위해.

이스라엘에 다녀오면 한동안 다시 갈 생각이 없어진다. 그들의 소위 ‘통관’에 넘치게 질려버리기 때문에. 까다롭기로는 전신 나체 스캔까지 당했다는 사람이 있으니 캐나다도 지지 않는다. 미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려면 족히 3시간 이상은 여유를 두어야 하고 뒷돈을 챙겨가야 트렁크를 끌고 나갈 수 있는 몇몇 국가도 있다. 그러나 눈앞에서 하얀 장갑을 매번 갈아 끼며 속옷까지 일일이 풀어헤쳐 기계에 넣어 살피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말초신경 끝까지 치미는 화를 참다못해 다시는 이 땅을 밟지 않겠노라 소리지르게 된다. “무슨 배짱으로 겁 없이 덤볐냐”고 끝내 한 소리 듣기는 했지만 이스라엘 공항은 지금 생각해도 불쾌하기 짝이 없다. 물론 정도야 다르겠지만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그것도 몇 년간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다면 목구멍을 태우며 내려간 모멸감에 그녀의 뱃속은 시커먼 재가 되지 않았겠나.

이스라엘에 친구들이 몇 있다. 축제 감독이고 예술가이며 평론가에 기자인 이들과는 꽤 오래 사귀었고 기다리는 사람 없는 아파트가 춥다 하길래 전기장판을 사서 보내주겠노라 농을 던지며 밤새워 얘기했다. 덩치 큰 셰퍼드와 고양이가 소파를 차지한 집으로 초대받아 가서는 창 너머 바다를 구경하려고 목을 빼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외신을 통해 가자지구 소식을 들었을 때 전쟁이 난 줄 알았고 이들의 안전을 걱정했다. 그러나 세상에 널린 정보를 거르지 않고 퍼 나르는 특정매체의 사진은 외신이 전하는 사실이 잘못된 것이며 정작 걱정해야 할 사람은 이제 ‘더는 울 수도 없게 되었을지 모르는 그녀’라고 말한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고 했다. 유대와 아랍의 조상 아브라함은 부인에게서 ‘하나님의 계시’로 이삭을 얻고 몸종에게서 낳은 형 이스마엘을 어미와 함께 사막으로 쫓았다. 영국을 지원하며 히틀러의 광기에 동족의 피를 내주고 이 땅을 사들인 이스라엘 건국 주역들에게 성경은 혀에 착 감기는 명분이었을 게다. 역사는 반복할 뿐 발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의 이 학살도 명분을 살 수 있는 자본과 권력이 의도하는 대로 머잖아 정당했던 것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그렇게 친구들이 전해오는 수치심도, 힘없이 죽어간 어린 생명들의 몸부림도 역사 뒤편으로 사라질 수도 있기에 참담한 가슴에는 오늘도 소리 없이 눈물만 흐른다.

김신아 아트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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