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가 실천하는 교황의 속내는 곧 교회, 사제, 신자들을 향해 ‘여러분도 이렇게 해보라’라는 뜻일 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21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문한림(유베날ㆍ59ㆍ사진) 아르헨티나 산 마르틴 교구 보좌주교가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초청을 받고 입국했다. 문 주교는 교황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14~18일) 그를 동행할 예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처음 만난 것은 문 주교가 1994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교구의 플로레스에 있는 테오도로 알바레스 시립병원 원목신부로 있을 때였다. 교황은 당시 플로레스 지역 담당 보좌주교였다. 문 주교는 병원에 있던 수녀들이 나이가 들어 그만 두자 한국 성가소비녀 수도회의 수녀들을 그 자리로 초청하자는 뜻을 주교(교황)에게 전하기 위해 찾아갔다.
문 주교는 “당시 교황은 얘기를 들은 뒤 며칠도 안돼 바로 한국에 초청 메시지를 보냈다”며 “그때 ‘굉장히 실천적인 분이구나’하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소박하고 검소한 세간살이도 문 주교의 기억에 남았다. 침실은 침대 하나, 옷장 하나, 서재는 책상과 조그만 책장,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교황의 소탈한 행보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교구장이 돼서도 그대로였다. 문 주교는 “대주교나 추기경들에게 연락을 하려면 비서를 통하게 마련인데 그 분은 전화를 직접 받거나 회신전화나 편지를 직접 했다”고 말했다.
즉위 후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가 그래서 문 주교에게는 새롭지 않다. 문 주교는 인터뷰 내내 “그분은 예전 그대로”란 말을 입에 달았다. “예전에는 눈에 띄지 않게, 남이 모르게 빈민촌을 찾고 장애인의 발을 닦아 주셨어요. 며칠 뒤 신문에 그런 소식이 나면 ‘아, 이런 곳에 가셨었네’하고 알았지요. 지금은 교황님이 되셨으니 모르게 할 수가 있나요(웃음).”
교황의 면모를 익히 알던 문 주교지만 선출 직후 교황이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서 보인 행동은 파격이었다. 당시 교황은 “좋은 저녁이다”라며 “내가 여러분에게 강복하기 전에 먼저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청했다. 문 주교는 “고개까지 숙이며 교황이 먼저 기도를 부탁한 건 유례가 없었다”며 “권위나 격식을 아주 쉽게 내려놓으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보나세라(좋은 저녁이다)’라는 교황의 평범한 인사를 보며 일반인들은 높은 곳에서 군림하는 교황이 아닌 우리와 함께 사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며 “그런 매력 덕에 세계 각국에서 교황의 인기가 높은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문 주교는 교황의 즉위명이 곧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교황의 생각이 담긴 것으로 해석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랬던 것처럼 교회가 ‘가난의 영성’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며 “성당을 크게 짓고 종을 치며 교인을 불러모으는 교회가 아닌, 거리로 나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풀이했다.
문 주교는 “예수가 그리스도인만 사랑한다고 하지 않으셨듯 교황 역시 천주교 신자만을 위해 한국을 찾는 건 아니다”라며 “교황의 방한은 분명 한국 사회와 천주교회에 긍정적인 자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76년 아르헨티나로 이민한 문 주교는 2014년 2월 해외에서 사목하는 해외 교포 출신 사제 중 처음으로 주교 수품했다. 현재 부에노스 아이레스 인근 산 마르틴 교구 보좌주교로 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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