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의 해병대 1사단 부대원들이 훈련을 마친 뒤 함성을 지르고 있다. 국방부 제공.

고생담이 쏟아진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지인들의 군 경험담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윤 일병의 안타까운 죽음이 부른 이야기 봇물이다. 글들은 대부분 괴담 수준이다.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

어느 지인은 이등병 때 식사를 앞두고 기도를 하는데 선임병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고참이 위냐, 하나님이 위냐?” 질문에 머뭇거렸다고 야적장으로 데리고 가 한 시간을 때렸다고 한다. 멍든 몸을 간부에게 들킬까 봐 한동안 목욕도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 지인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자 댓글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렸다. 각자 군에서 겪었거나 들은 이야기들이었는데 읽다 보니 오싹했다. 누군가는 어두운 밤 훔쳐온 보도블록으로 부대 환경미화에 일조한 일화를 소개했다. 군인 정신은 ‘제 정신이 아니다’라던 우스갯말이 떠올랐다.

군대에서의 고생담은 종종 술자리의 안주가 된다. 고된 훈련에 대한 것이거나 선임병 또는 간부들의 횡포에 얽힌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훈련 받으며 겪은 일은 종종 야유를 부르는 무용담으로 흐르기 일쑤다. 몸은 힘들었다고 하나 정당한 국가 명령에 따라 이뤄진 일이니 추억이 되기 마련이다. 선임병이나 간부들에게 ‘당한’ 이야기는 주로 공분을 수반한다. ‘그 놈 사회에서 만나면…’ 이라는 욕설 섞인 가정법도 뒤따른다. 사단장 운전병 출신인 한 친구는 ‘사단장 사모’까지 극진히 모셔야 했던 군 시절을 전해준 적이 있다. 사단장 부인이 신발을 벗을 때 뒤축을 잡아주곤 했다고 말할 때 술자리 친구들은 기겁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입대 전 공부 좀 했다 하는 사람들이 간부 자녀들의 사교육을 담당했다는 사연은 흔하디 흔하다. 군대에서 억울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하거나 비인간적 대우 때문에 모멸감을 느꼈다는 예비역들이 주변에 많고도 많다.

기자도 군대를 다녀왔다. 최전방이었으나 운이 좋았다. 선임병들은 대체로 순했다. 다행히도 딱 한번만 얻어 맞았다. 사이 좋은 동기 셋과 내무반 생활을 했다. 어느 한 선임병은 “동기 많은 것도 복”이라고 평했다. 선임병들이 제대 무렵의 후환이 두려워 동기 많은 후임병들은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한 번은 옆 소대 선임병과 야간 경계 근무를 함께 했다. 그 선임병은 자신의 잠자리 악취미를 자랑스레 고백했다. 옆 소대에 배치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럭저럭 힘들지 않은 군생활이라 ‘착각’했다. 휴가를 나왔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억울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환상의 00사단’이나 ‘꿈의 00사’라는 말이 동년배 사이에서 유행하던 시절이다. 보직과 소속 등에 따라 군 생활은 제 각각이었다. ‘군대는 줄’이라는 속설을 실감했다.

돌이켜보면 군대는 일종의 ‘로또’였다. 어느 부대에 배치돼 어떤 선임병을 만나고 어떤 지휘관의 명령에 따르는 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엇갈리곤 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이 ‘복불복’의 원칙이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거다. 사회 고위층이거나 고위층에 선이 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안전하고 편하게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손을 쓴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군대는 누군 가에게만 당첨 확률이 높은, 불공정한 로또인 셈이다.

불행은 비교에서 나온다. 부당한 조치가 만들어낸 비교 대상은 종종 분노와 반감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제아무리 국민의 신성한 의무라고 하나 집행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면 군 복무가 그저 억울함의 연속일 따름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로 견디기엔 21개월(육군 기준)은 길고도 길다.

군대 안의 폭력과 가혹 행위, 인권 침해에 대한 여러 대책들이 쏟아져 나올 기세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군입대부터 부대 배치 등 병역 의무의 모든 과정이 좀 더 공정한 ‘운수 경쟁’이 되었으면 좋겠다. 힘있는 인사들의 자제들이 유난히 몸이 약해 병역을 면제 받거나 좋은 보직을 받는 일이 계속된다면 병사들의 울화를 다스릴 수 없을 것이다. 공평한 병역의무가 까닭 모를 폭력과 가혹행위 등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라제기 문화부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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